다리미가 작품? 난해한 다다, 쉽게 이해하기① [영감 한 스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4일 11시 37분


코멘트

모든 의미를 지우려한
다다 예술의 세계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현대미술은 난해하다’는 명제를 만들어내는 데 가장 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하는 ‘다다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명화를 기대하고 미술관에 들어섰는데, 엉뚱한 물건들이 단상에 놓인 채 ‘나도 예술 작품이야’라고 외칠 때 관객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게다가 그 작품들이 내 눈엔 더 좋아보이는 그림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면?

이런 당황스러운 경험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채 의문으로만 남아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현대 미술은 사기라거나 돈장난이라고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황당함 자체가 예술적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생각해보셨나요? 이것을 이해하면 미술관 관람은 훨씬 더 즐겁고 의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영감한스푼’은 두 차례에 걸쳐 다다 예술의 세계로 떠나보겠습니다.

만 레이의 작품 ‘선물’(1921).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프랑스 파리의 한 상점. 술에 취한 두 남자가 가게를 열심히 뒤지더니 다리미와 작은 못 여러 개, 접착제를 사들고 갑니다. 한 명은 젊은 예술가 만 레이, 다른 사람은 괴짜 음악가 에릭 사티입니다.

미술, 음악과는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물건을 들고 이들은 불 꺼진 갤러리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만 레이는 다리미 바닥에 작은 못을 일자로 붙입니다. 그리고 1921년 개인전에서 이것을 ‘선물’이라는 작품으로 발표하죠.

이제 여러분은 미술관에서 만 레이의 ‘선물’을 마주합니다. 이름은 선물이요 모양은 다리미인데, 열심히 형태를 쳐다봐도 이게 어떤 예술이라는 건지,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문만 머리속에 가득 차게 됩니다.

“다리미에 왜 못을 붙여 못 쓰게 만들었을까?”

“이 못쓰는 다리미가 예술 작품이라고?”

만 레이와 에릭 사티가 술에 취해 이상한 짓을 벌여 놓고 작품이라 우기는 건 아닐까요? 유명하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준다고 하니, 다리미에 못 쯤이야 행위 예술로 봐줄만한 짓인 걸까요?
이것은 당신이 알던 다리미와 변기가 아닙니다
만 레이의 ‘선물’이 예술 작품이 된 방식은 마르셀 뒤샹의 ‘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뒤샹은 변기에 사인을 하고 ‘샘’이라는 제목을 붙인 뒤 작품으로 전시하죠. 이 때 뒤샹은 우리가 흔히 아는 변기의 기능을 제거해버리고, 그 모양과 물이 흘러 나온다는 것만 집중해 이것이 ‘샘’이라고 주장합니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현대미술을 바꾼 이 작품을 두고 정말 많은 관념적인 해석이 있죠. ‘개념미술’이라는 어려운 말, 혹은 ‘작가의 의도가 그렇기 때문에 샘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예술사적 맥락 이전에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더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낯설게 보기’ 입니다.

뒤샹은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정해진대로 사용하는 변기를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라고 제안합니다. 마치 세잔이 과거의 미술사가 규정해 온 산을 버리고, ‘자신만의 산’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봤던 것처럼, 세상의 것들을 ‘직관’하라는 메시지를 더 급진적으로 말하고 있는 셈이죠.

변기가 변기라고 주어진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다른 해석을 해보라는 이야기도 됩니다.

만 레이는 뒤샹과 완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다리미의 기능을 없애 버렸으니까요. 이로 인해 변기는 변기가 아니고, 다리미는 다리미가 아니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모든 것을 거부하고 파괴하는 것이 바로 ‘다다 예술’입니다.
세상 정해진 모든 것을 거부한다
“gadji beri bimba/glandridi lauli lona cadori…”

읽을 수도, 무슨 뜻인지도 모를 이 문장은 다다 예술가 휴고 볼이 발표한 시의 첫 대목입니다. 변기의 의미를 제거하고, 다리미의 의미를 제거한 것처럼 휴고 볼은 언어의 의미를 제거해버립니다.

그가 시를 낭독하는 모습도 보세요. 마치 나는 깡통 로봇 같은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손을 나뭇가지처럼 만들어버린 장갑이 인상적이죠.

다다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였던 스위스 ‘카바레 볼테르’에서 시를 낭독하고 있는 휴고 볼.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다다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였던 스위스 ‘카바레 볼테르’에서 시를 낭독하고 있는 휴고 볼.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또 다른 다다 예술가들은 종이 위에 무작위로 다른 색 종이를 흩뿌린 다음 그것을 작품으로 발표했습니다. ‘우연성’에 기댄 것이죠

이 예술가 그룹에 ‘다다’라는 이름이 정해진 과정도 완전히 랜덤입니다.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독일 예술가 리하르트 휠젠베크가 사전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 나이프로 가리킨 단어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다다’의 뜻은 어린아이들이 타는 목마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목마’의 모습에서 다다 예술가들의 태도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다 목마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무의미하게 앞뒤로 흔들리기만 하죠. 즉 ‘무의미함’, 의미를 제거하는 다양한 행위를 다다 작가들은 예술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의미 없는 다리미, 의미 없는 변기, 의미 없는 시…

예술가들은 왜 세상이 정해 놓은 모든 것을 거부하려고 했을까요? 여기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뉴스레터에서 이어가보겠습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99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