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휴먼’ vs ‘금붕어’… 미래 인간에 대한 확신도 불안도 ‘오류’[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동아일보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AI 시대, 미래 인간은 누구인가
‘AI 시대에 인간은 더 행복해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유토피아적 상상과 디스토피아적 상상으로 나뉜다. 영화 ‘그녀(Her)’는 주인공 테오도르가 AI 사만다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다뤘다. 사진 출처 워너브러더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인공지능(AI)이 주도할 미래의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인간은 그 세계에서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미래의 인간은 생존을 위한 노동의 고통에서 해방돼 고차원적인 욕구를 실현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까. 최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인간 두뇌보다 1만 배 뛰어난 ASI(Artificial Super Intelligence·초인공지능) 시대에는 인류가 금붕어가 되고 AI가 인간이 되는 모습이 펼쳐질 것”이라며 “어떻게 하면 AI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인간이 더욱 똑똑해질 AI를 잘 활용하며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을 때에만 인류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AI의 중요성은 산업과 교육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핵심은 AI가 인간과 유사한 감정과 욕구 체계를 갖게 될 경우 인간과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 ‘진정한 소통’이 가능할지 여부다. AI가 인간의 자기 인식과 자아실현을 돕는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피상적 수준의 보조자에 머물 것인지가 논의의 중심이다. AI의 역할이 청소나 운전처럼 육체적으로 힘들고 반복적인 노동을 대체하는 데 그칠 것인지, 인간과 정서적으로 친밀하게 교감하는 파트너로까지 확장될 것인지는 여전히 뜨거운 쟁점이다.
AI 시대에 인간은 과연 더 행복해질까. 이 질문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은 남자 주인공이 여성의 목소리를 합성한 AI와 대화를 나누며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영화 ‘그녀(Her)’에서 잘 드러난다. AI가 인간과 정서적으로 충분히 교류하게 되면 AI가 주도하는 미래에는 사랑을 포함한 인간의 욕구가 더 완전하게 충족될 가능성도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는 통제 불가능해진 로봇이 인류를 위협하는 디스토피아의 상징적 서사를 풀어낸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반면 영화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에서 묘사되듯, AI를 탑재한 로봇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으로 돌변해 인류의 행복을 파괴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무시할 수 없다. AI에 대해 기대보다 두려움이 더 큰 이유는 과학자들이 ‘강한 AI’의 도래를 예견해 왔기 때문이다. ‘특이점 이론’이나 ‘초인(超人) 이론’이 말하듯 인간을 압도하는 기계가 등장하면 결국 인류가 파멸로 내몰릴 수 있다는 불안이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AI와 생명공학 기술을 활용한 ‘인간 강화’가 본격화되면, 기존 진화의 단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인류가 탄생할 수 있다. 기계와 인간의 혼종인 이른바 사이보그 종(種)이 생겨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많은 과학자들이 니체의 ‘초인(¨Ubermensch)’ 개념에서 다양한 영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봇공학자들을 사로잡은 초인은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의 핵심 개념이다. 니체가 미래의 인간 모습을 예견한 선구자로 인정받는 이유다.
미래의 인간은 누구인가. 세계 트랜스휴머니스트 협회(WTA)를 창설한 닉 보스트롬이 니체를 트랜스휴머니즘의 창시자 중 하나로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니체가 제시한 초인 개념의 확장성 때문이다. 니체는 미래의 인간을 예견했을 뿐 아니라, 그가 남긴 ‘미래 철학의 서곡’은 오늘날 인간에 대한 기술공학적 이해에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낡은 질문 대신, ‘신인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은 극복돼야 할 그 무엇”이라고 규정하며, 기존 인간을 넘어서는 새로운 종의 창조를 요구했다. 니체가 말한 ‘미래의 인류’란 결국 자기 극복을 통해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 인간을 뜻한다. 과학철학자들이 미래 인간의 개념을 정립할 때 특히 주목하는 것이 바로 초인이다. 초인은 인간의 한계를 끊임없이 넘어서려는 존재이며, 생물학적 조건에 고정되지 않고 가변적·우연적 진화의 과정에 있는 ‘도정성(途程性)’을 지닌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전통 철학이 규정한 인간관을 넘어 보다 인간에 대한 역동적이고 열린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트랜스휴먼, 포스트휴먼은 합리성과 이성 중심으로 고정돼 있던 전통적 인간관이 소멸하거나 해체되면서 새 버전의 인간성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인간과 기계의 연결은 인간의 결함을 소극적으로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의 능력 확장이라는 적극적인 의미로 봐야 한다.
그러나 출생, 죽음, 육체라는 인간의 종적 특성을 과학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면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통해 니체가 말한 초인을 완성하고 궁극적으로는 진화의 마지막 단계를 뛰어넘는 ‘트랜스휴먼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동시에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계속 시도하다 보면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는 시점인 ‘특이점’이 온다는 불안한 예견도 있다. 생명체에서 볼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돌연변이가 AI와 로봇에서도 발생한다면, 그 결과는 인류에게 재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미래의 인간에 대해 논의할 때 자칫 논리적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다. ‘무지로부터의 논증’은 미래 인간에 대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오류다. 미래의 인간을 ‘금붕어’나 ‘초인’으로 예단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AI 시대를 성찰적으로 담담하게 맞이하는 일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