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파스타, 8시간 숙면…루틴 지켜 돌아온 ‘짐승’[김종석의 굿샷 라이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0일 08시 00분


코멘트

SSG 창단 2년 첫 우승 주역 김강민
철저한 자기 관리로 40세 MVP 등극
작아도 실천 가능한 생활 습관 중요
노년층 인지 기능, 건강 유지 도움


40세 최고령으로 한국시리즈 MVP에 뽑힌 SSG 김강민. 그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개인 통산 5번째 우승 반지를 끼게 됐다. 김민성 스포츠동아 기자 marineboy@donga.com
40세 최고령으로 한국시리즈 MVP에 뽑힌 SSG 김강민. 그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개인 통산 5번째 우승 반지를 끼게 됐다. 김민성 스포츠동아 기자 marineboy@donga.com
스포츠에서 루틴(routine)은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고유한 프로그램을 일정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의미의 징크스와 달리 긍정적인 실천이다.

이번 시즌 프로야구 KBO리그에서 SSG를 창단 두 시즌 만에 처음 정상으로 이끈 김강민(40)은 2년 전부터 홈게임을 앞두고는 저녁 식사 때 대부분 파스타를 먹고 있다. “게임 전 먹으면 좋은 음식이라고 해서 파스트를 들었더니 결과가 좋더라고요. 몸에 부담이 덜하면서 힘도 나고요. 샐러드나 시금치가 들어간 파스타나 알리오올리오를 선호합니다.”

●“혈당이 완만하게 올라가고 에너지원 충분”
40세 김강민(왼쪽)이 SSG의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된 뒤 동료 선수, 구단 관계자와 기뻐하고 있다. 김종원 스포츠동아 기자  won@donga.com
40세 김강민(왼쪽)이 SSG의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된 뒤 동료 선수, 구단 관계자와 기뻐하고 있다. 김종원 스포츠동아 기자 won@donga.com
김강민은 키움과의 한국시리즈 때도 안방경기에 앞서 늘 파스타를 찾았다. ‘파스타 파워’라도 있었을까. 김강민은 40세 1개월 25일로 한국시리즈 최고령(40세 1개월 25일) 최우수선수(MVP)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메이저리그 최고령 월드시리즈 MVP는 1979년 챔피언 피츠버그의 윌리 스타젤로 당시 나이 39세 225일.

그는 이번 시리즈에서 8타수 3안타 5타점을 기록했는데 대타 홈런을 2개나 날리며 과거 ‘괴물’로 불릴 때 괴력을 재현했다. 특히 5차전에서 팀이 2-4로 뒤지던 9회말 대타로 나서 날린 끝내기 홈런은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 됐다.

운동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파스타를 찾는 경우가 많다. 박재현 한양대구리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파스타의 당지수(Glycemic Index)가 50~55정도로 높지 않으며 복합탄수화물로 혈당이 완만하게 올라가 오랜 기간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수정 차의과대학 스포츠의학과 교수는 “파스타는 한식처럼 많은 반찬이 필요하지 않고 탄수화물 비중이 높으며 단백질, 지방 보다 빠르게 소화, 흡수될 수 있는 메뉴”라며 “운동 중 탄수화물은 근육과 중추신경계의 연료로써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파스타의 장점을 높이려면 통밀을 사용해 요리하면 더욱 좋다고 한다. 통밀 파스타는 적은 양에도 포만감을 주며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고질 햄스트링에 경기 중 근력 운동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최고령 MVP에 뽑힌 SSG 김강민(40)은 평소 철저한 자기관리로 롱런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체 근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는 김강민. MK스포츠 제공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최고령 MVP에 뽑힌 SSG 김강민(40)은 평소 철저한 자기관리로 롱런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체 근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는 김강민. MK스포츠 제공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최고령 MVP에 뽑힌 SSG 김강민(40)은 평소 철저한 자기관리로 롱런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체 근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는 김강민. MK스포츠 제공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최고령 MVP에 뽑힌 SSG 김강민(40)은 평소 철저한 자기관리로 롱런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체 근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는 김강민. MK스포츠 제공
자신의 몸을 위한 최상의 메뉴까지 꼼꼼히 챙기는 김강민은 골반이 전방으로 기울어진 체형이라 남들 보다 부상 위험이 높다. 특히 긴장도가 높은 햄스트링은 이번 시즌에도 두 차례 다쳤을 만큼 ‘아킬레스건’이다. 박재현 교수는 “햄스트링이란 허벅지 뒤쪽에 있는 근육들을 합쳐서 부르는 용어로 무릎을 구부리고 고관절을 늘여서 펼치는 역할을 한다”며 “걷고 뛰고 점프와 같은 동작들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햄스트링은 운동선수의 12~16%가 경험할 정도로 흔하게 부상을 입는 부위다. 재발률도 34%로 높은 편이다.

김강민은 부상 예방을 위해 시즌 때도 매일 30분 동안 개인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력을 강화했다. 선발 출전이 아닌 경우 5회 이후 밴드 등 소도구를 이용해 코어 근육 활성화를 진행했다.

김강민은 “우리팀 트레이닝 파트에게 나는 요주의 인물이다. 다른 선수들이 며칠에 한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나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했다”며 “신체 부위별로 나눠 하고, 상체와 하체로 나눠 하고, 스피드 훈련도 했다. 트레이닝 파트가 정말 신경을 많이 써줘 더 챙겨줘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허수정 교수는 “햄스트링 부상 재발을 막으려면 신장성 근력운동과 순간적으로 빠르게 수축하는 모드에서의 운동(플라이오 매트릭 등)이 필요하다”며 “햄스트링 근육 뿐 아니라 엉덩이 근육, 후면 사슬 그룹의 근육들을 골고루 좋은 기능으로 유지하는 것이 도움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강민은 8시간 수면 원칙도 지키기 위해 야간 경기를 마친 뒤 불필요한 활동은 하지 않았다. 체중도 베스트 수치인 89㎏을 늘 유지하고 있다.

●추신수 덕분에 다시 찾은 야수 본능
2022 한국시리즈에서 경기 전 몸을 풀고 있는 40세 동갑내기 김강민(오른쪽)과 추신수. 주현희 스포츠동아 기자 teth1147@donga.com
2022 한국시리즈에서 경기 전 몸을 풀고 있는 40세 동갑내기 김강민(오른쪽)과 추신수. 주현희 스포츠동아 기자 teth1147@donga.com
세월을 거스르는 김강민의 눈부신 활약은 이처럼 자신의 루틴을 철저하게 따른 결과다. SSG 프런트 관계자는 “40세까지 선수생활을 이어올 수 있는 것은 20대부터 철저한 자기관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이 더 길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김강민은 남들 보다 일찍 경기장에 나와 땀을 흘렸다. 운동과 식단을 통한 체중 관리, 시즌 중에도 지속적인 웨이트트레이닝 등 젊은 선수와 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한 자기노력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16시즌을 뛴 동갑내기 동료 추신수의 합류가 김강민에게는 큰 힘이 됐다. “추신수는 개인 트레이닝만 하루 2시간씩 하는 데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어요. 감히 흉내내기도 어렵지만 그런 모습을 통해 배우는 게 많아요.”

김강민은 근육을 단단하게 채우면서 마음은 비웠다고 한다. “20,30대처럼 운동할 수 있는 몸은 아닙니다. 오늘 한 게임 풀로 하면 다음날 베스트 컨디션으로 나갈 수 없어요. 무리하지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했죠. 욕심을 비우니까 모든 게 편해지더라고요. 뛰는 순간이 행복할 뿐입니다.”

김강민은 자신을 이빨 빠진 짐승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와이번스가 랜더스에 인수된 뒤 더 혹독하게 훈련했다. 새로운 팀에서 우승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됐기 때문이다. 이제 선수로서 해볼 건 다 해본 것 같다. 팀에 민폐가 되면 바로 유니폼을 벗어야 한다. 그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40대 중반에도 뛴 이치로의 집요한 습관
철저하게 루틴을 따르며 40대 중반을 넘어서까지 선수로 뛴 스즈키 이치로. 아사히신문 홈페이지 캡쳐
철저하게 루틴을 따르며 40대 중반을 넘어서까지 선수로 뛴 스즈키 이치로. 아사히신문 홈페이지 캡쳐
46세에 은퇴한 일본의 야구 스타 스즈키 이치로(49)는 남다른 루틴으로 유명했다. 그는 경기 전에는 똑같은 음식만 먹었는데 홈 게임 전에는 아내가 만든 카레, 원정경기 때는 치즈 피자만 찾았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몸에도 부담을 덜 주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이다. 허리에 안 좋을까 싶어 푹신한 소파를 멀리하며 스파이크를 신으면 자칫 미끄러질 수 있어 계단 대신 장애인용 슬로프를 이용하는 건 널리 알려진 일화. 늘 일정한 출근길 코스를 따라 오후 2시면 야구장에 도착했다.

인기 포수로 이름을 날린 홍성흔은 한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선수 시절 주꾸미를 먹고 홈런을 친 뒤 주꾸미를 매일 섭취해 4경기 연속 홈런을 친 적이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운동이 직업인 선수들은 위장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식단을 짜야 게임에 안정감 있게 집중할 수 있다. 골프 선수들은 대회 때 생선회 같은 날 음식을 멀리하기 마련이다. 허수정 교수는 “소화가 잘되거나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주는 메뉴를 정해 놓고 식사를 하면 경기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세계적인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명상과 일기쓰기를 하고 있다. 투자가 워런 버핏은 매일 아침 신문을 읽는다.

● 계단 걷기, 그림 그리기 등 규칙적인 일상 반복
일상에서 계단걷기 같은 루틴을 정해 실천하면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된다. 정란지 씨 제공
일상에서 계단걷기 같은 루틴을 정해 실천하면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된다. 정란지 씨 제공
일반인에게도 일상의 규칙적인 습관은 삶에 양념이 되는 행동이 될 수 있다. 루틴은 사람들이 즐겁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캐나다 퀸즈대학 메건 에질로 교수는 “루틴은 인지 기능 향상과 건강 증진 효과가 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노년층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등하교나 출퇴근 때 지하철역에서 계단 이용, 점심 식사 후 걷기, 1주일에 몇 번은 동네 산책이나 자전거를 탄다면 1일 운동권장량을 충족할 수 있다. 또 정해진 시간에 스포츠 게임, 그림그리기, 악기 연주, 노래 부르기 등 취미 생활을 하거나 독서클럽 등 지역사회 활동에 관심을 가지면 몰입과 성취감을 통해 정신 건강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약을 같은 시간에 복용하고 열쇠를 늘 제 자리에 두면 약을 머었는지 안먹었는지 헷갈리거나 잃어버린 물건을 찾느라 헤매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확보하게 된다. 코칭심리전문가인 정그린 그린코칭 솔루션 대표는 “루틴은 무의식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운동, 식단 등 평소 습관적인 관리가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제 올해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새해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미리 작지만 의미 있는 루틴들을 만들어 정리해보면 어떨까. 물론 절제와 노력을 통한 쉼없는 실천은 필수. 새로운 인생이 열릴 수도 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