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 빈번한 모텔서 치매노모가 사라지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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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영화 ‘파로호’ 개봉
주인공의 무기력한 눈빛 등 관객에 긴장감 천천히 스며들어
임상수 감독 “불안-긴장 쌓아 몰입하게 만드는 게 연출 목표”

시골 국도변 외진 곳에 자리한 허름한 모텔. 이 모텔에선 1년이면 서너 번 극단적 선택을 한 손님이 발견된다. 모텔을 운영하는 40대 미혼 남성 도우(이중옥)는 목맨 시신을 보고도 별 반응이 없다. 익숙한 듯 시신을 보는 공허한 눈은 그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황폐한지를 보여준다. 객실을 개조한 방에선 치매에 걸린 노모가 짐승처럼 울부짖고 주기적으로 난동을 부린다. 도우에겐 절망이 곧 일상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일이 거의 없다. 누르고 삭여내길 거듭할 뿐이다.

18일 개봉한 영화 ‘파로호’는 도우가 노모가 실종된 후 더 깊은 절망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도우는 효자상까지 받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를 의심한다. 오랜 간병에 지쳐 노모를 살해했을 것이란 의심이다.

임상수 감독(41·사진)은 장편 데뷔작인 ‘파로호’에서 기존 스릴러물처럼 긴박한 속도로 이야기를 끌어가지 않는다. 도우의 무기력한 눈빛과 소심한 행동을 무심히 보여주는 한편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등 적막을 깨는 음향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긴장감이 천천히 스미게 만든다. 임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불안과 긴장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데 중점을 뒀다”며 “관객들이 무심코 영화를 보다가 자세를 살짝 고쳐 앉으며 어느새 몰입하게 하는 것이 연출 목표였다”고 했다.

감독은 노모는 어디로 간 것인지, 도우가 범인이 맞는지 좀처럼 답을 알려주지 않고 혼란을 증폭시킨다. 도우와 정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미스터리한 젊은 남성 호승(김대건)을 모텔 손님으로 등장시키며 범인이 누구인지 더 헷갈리게 만든다. 임 감독은 “노모의 실종 이후 도우의 신경쇠약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설정을 더해 호승이 실존하는 인물인지 아닌지조차 짐작하기 어렵게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파로호는 강원 화천에 있는 호수 이름. 6·25전쟁 당시 중공군 시신이 대거 수장된 곳이다. 임 감독은 제목을 ‘파로호’로 정한 이유에 대해 “파로호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호수지만 그 아래에 부패된 것들이 침전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며 “스스로를 가둔 채 억눌린 욕구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살아가는 도우와 닮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관객들이 각자의 심연에 억눌러 둔 게 무엇인지, 이를 애써 가라앉혀만 두고 외면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밑바닥에 쌓아두기만 하다가 언젠가는 수면 위로 폭발하듯 올라오는 순간을 맞닥뜨릴지도 모르니까요.”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파로호#스릴러 영화#임상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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