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문화

1980, 90년대 그립나요? 통팥과 고운 앙금의 조화…추억의 그 빵 맛 그대로[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

입력 2021-12-01 03:00업데이트 2021-12-01 03:52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광주 광산구 ‘피낭시에제과점’의 단팥빵. 임선영 씨 제공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잘 만든 ‘생도너츠’에서는 단풍잎 향기가 난다. 바스러지는 것 같으면서도 촉촉하고, 한입 베어물면 시나몬 향이 코끝을 적신다. 광주 광산구의 공력 있는 동네빵집 ‘피낭시에제과점’. 이곳의 옛날 빵은 일품인데 그중 단팥빵, 생도너츠, 소금빵, 우유식빵이 특히 인기다. 1980, 90년대 빵 맛을 추억하는 이들은 이곳을 찾으며 향수에 빠져든다. 정형태 제과기능장은 1996년 지인의 권유로 빵 판매를 시작했다가 맛있고 건강한 빵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로 제대로 된 발효를 거쳐 누구나 맛있고 건강한 빵을 즐기게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이 집 단팥빵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단팥빵’이다. 처음 이름을 접할 때는 반신반의했다. 단팥빵 마니아인 필자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빵을 샀는데 한 손에 묵직한 팥의 무게가 전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빵 가운데를 살포시 갈라보자 푸짐한 팥소가 흥부네 박 터지듯 풍성한 자태를 드러냈다. 통팥과 고운 앙금의 아름다운 조화, 부드럽게 녹아내리며 씹히는 팥알의 식감, 촉촉하면서 적당히 쫄깃한 빵살의 묘미가 느껴졌다. 국산 팥 값이 올라도 최상품을 고수한다.

빵을 먹고 속이 더부룩하지 않은 건 발효를 제대로 해서다. 반죽은 두 번에 걸쳐 진행된다. 팥소를 삶은 후 냉장 숙성을 시키는데, 이는 반죽의 발효 온도를 낮춰 장시간 천천히 발효시킨다. 오븐에서는 겉은 살짝 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하게 만들기 위해 골든타임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또 하나의 묘미는 생도너츠. 요즘 베이커리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 품목은 제빵사가 옛날 빵에 대한 기억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다. 생도너츠 반죽은 발효를 하지 않아 과자로 분류되며, 진 반죽으로 촉촉하게 만들어 도너츠 앞에 ‘생’이라는 접두사가 붙는다. 뻑뻑함이 전혀 없이 바스러지듯 녹아드는데 비결은 앙금과 피의 적절한 비율이다. 생도너츠 하나가 75g인데 앙금은 40g, 피 35g으로 정확히 빚어낸다. 앙금이 과하면 달고 피가 과하면 퍽퍽하기에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황금 비율이다.

‘고소미’라는 이름의 소금 빵은 짭조름한 가운데 부드러운 감칠맛이 그만이라 식사빵으로 좋다. 우유식빵은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푸짐하다. 정 제과기능장의 식사빵은 글루텐을 과하게 잡지 않고 발효와 숙성을 오랜 시간 진행해 소화하기 좋다.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만들어진 그의 빵은 가격도 낮다. 누구나 부담 없이 맛있는 빵을 먹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기부에도 적극적이다. 빵에 인생을 건 제과기능장은 매일 아침 팥소를 끓이고 빵 반죽을 잡으며 소망을 불어넣는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문화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