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뽑힌 이가 빚은 예술… 소외된 존재 돌아보게 해 [광화문에서/손효림]

손효림 문화부차장 입력 2021-10-18 03:00수정 2021-10-1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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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차장
“내가 왜 수련을 좋아하는지 알아? 뿌리가 없어 보이지만 실은 있어. 뿌리 없이 살 순 없거든.”

13일 개봉한 영화 ‘푸른 호수’에서 베트남 이민자 파커는 한국인 입양아 출신인 안토니오(저스틴 전)에게 말한다. 베트남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에 온 파커는 안토니오를 가족 모임에 초대해 베트남 음식을 맛보게 하고 노래도 들려준다. 아시아 문화를 접한 안토니오는 생모와의 희미한 기억을 더듬는다.

한국계 미국인인 저스틴 전이 시나리오를 쓰고, 출연에 연출까지 한 이 영화는 추방 위기에 처한 안토니오가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야기를 처연하게 그렸다. 저스틴 전은 “추방 위험에 처한 9명을 인터뷰해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혔다. 영화는 올해 칸영화제에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됐다.

양부모에게 학대받고 자란 안토니오는 30년 넘게 미국에서 살았지만, 양부모가 입양 당시 서류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은 외국에서 입양된 이들에게 시민권을 자동 부여하는 법을 2000년 마련했지만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아 수만 명이 추방 위기에 내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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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의 아내 캐시는 “미국인인 저와 결혼했다고요”라고 외치지만 변호사는 “그래도 구제받지 못한다”며 고개를 젓는다. 방법은 안토니오가 미국에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 입증하는 건데, 이 역시 녹록지 않다. 영화 맨 마지막에는 추방됐거나 그럴 위기에 처한 각국 입양아 출신 실제 인물들의 이름과 사진이 나온다. 1964년에 입양된 여성도 있었다.

“미국에 살면서 삶의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해 왔다”는 저스틴 전은 고국에서도, 살아온 나라에서도 거부당한 이들이 발 디딜 곳이 어디인지 묻는다.

영화를 보며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를 떠올렸다. 탄자니아 난민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그는 장편소설 ‘파라다이스’ ‘바닷가에서’ 등을 통해 난민, 이민자의 정체성 혼란을 탐구했다. 우리에겐 낯선 작가로, 한국에 출간된 책이 없어 출판계에서는 “노벨문학상 특수가 사라졌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적, 종교, 인종의 차이로 외면받는 이들의 삶을 일관되게 그려온 그의 수상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던진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탄생시킨 문학, 영화, 드라마는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는 특정 집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푸른 호수’에서 안토니오의 의붓딸 제시는 아빠를 무척 좋아하지만 엄마 배 속에 있는 안토니오의 친딸이 태어나면 아빠가 자신을 외면할 거라 두려워한다. 제시는 친부에게 버림받은 아픔이 있다. 배제되고, 부유하는 존재의 불안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함께 짚은 것이다. 구르나는 “문화장벽은 영속적이지 않으며 인간이 극복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 장벽을 걷어내는 데 예술은 주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손효림 문화부차장 aryssong@donga.com
#푸른호수#문화장벽#저스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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