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헤겔이 렘브란트 그림에 빠진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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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아틀리에/이택광 지음/192쪽·1만5000원·휴머니스트

이 그림은 초상화라기보다 영화의 한 장면에 가깝다. 심각한 표정으로 작전을 논의하는 지휘관 두 명을 중심으로 병장기와 북을 챙기는 장병들의 부산함이 겹쳐 있다. 마치 당장이라도 진격할 태세의 역동성이 그림 전체를 휘감고 있다. 강렬한 에너지 그 자체다.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간순찰’은 프란스 반닝코크 대위 등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민병대로부터 주문받은 초상화다. 흥미롭게도 이 시대의 걸작에 대해 정작 주문자들은 자신들의 실제 모습과 너무 다르다며 대가 지불을 꺼렸다. 예술은 현실의 단순한 복사판이 아님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독일 관념철학의 대가 헤겔도 그렇게 생각한 듯하다.

철학과 문화비평을 전공한 저자가 쓴 이 책에 따르면 헤겔은 렘브란트의 그림이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도래를 반영한다고 봤다. 유럽 절대왕정 시대가 절정에 이른 17세기 네덜란드인들은 에스파냐 펠리페 2세의 아르마다(무적함대)를 무찌르고 자유를 쟁취했다. 렘브란트의 ‘야간순찰’이 뿜어내는 시민들의 진취적 기상과 쾌활함은 당시 네덜란드의 시대정신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헤겔의 해석이다. 그는 ‘미학강의’에서 “사교계나 궁중의 겉치레나 오만한 고상함 따위로는 감히 네덜란드 회화의 내용에 접근할 수 없다”고 썼다.

외양과 본질은 구분되지 않으며, 외양을 통해 본질이 드러난다는 헤겔 철학의 정수를 렘브란트 그림이 반영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이 밖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빈센트 반 고흐 등 서양미술 걸작들과 서구 철학의 접점이 궁금하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헤겔#렘브란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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