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출산 100일 후 나는 끔찍한 망상에 시달렸다”

이호재 기자 입력 2021-04-03 03:00수정 2021-04-03 04:14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네 눈동자 안의 지옥/캐서린 조 지음·김수민 옮김/400쪽·1만6000원·창비
백일잔치를 며칠 앞두고 저자는 아들의 눈에서 악마를 보았다. 산후정신증을 앓은 그는 가족을 알아보지 못한 건 물론이고 자신이 누군지도 인식하지 못했다. 이 책은 가디언 등 영미권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게티이미지코리아

2017년 아들을 낳았다. 백일잔치를 8일 앞두고 병이 찾아왔다. 아들의 눈에 악마가 보였다. 자신 곁에 악령이 따라다닌다는 망상과 환각 증상이 시작됐다. 남편의 도움으로 병원 응급실로 겨우 갔다. 병원에 도착했으나 증상은 멈추지 않았다. 비명을 질렀다. 입고 있던 옷을 스스로 찢었다. 나흘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 책은 산후정신증을 앓은 저자가 정신병원에 머물며 기록한 에세이다. 산후정신증은 출산 여성의 0.1∼2%만이 겪는 병이다. 극도의 수면장애, 망상, 정서불안을 앓는다. 일부는 출산이나 결혼 자체를 부인한다. 심할 경우 아이를 해치기까지 한다. 일시적으로 슬프거나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산후우울증보다 훨씬 심각하다. 저자는 왜 자신이 산후정신증에 걸렸는지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회상하면서.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강압적이었다. 분노가 폭발하면 이성을 잃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분노는 유달리 저자의 남동생인 테디에게 향했다. 아들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닐까. 그는 “(아버지는) 테디가 아들이기 때문에 기대를 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고민한다.

성인이 된 뒤엔 드류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드류는 한마디로 나쁜 남자였다. 화가 나면 저자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벨트로 때리기도 했다. 폭력의 이유는 다양했다. 잔소리가 많다, 지나치게 대든다. 그는 ‘매 맞는 여자’로 살았다. 광대뼈에 금이 갈 정도로 맞은 날 그는 겨우 드류에게서 도망쳤다.

주요기사
시간이 흐른 뒤 현재의 남편 제임스를 만났다. 제임스는 좋은 남자였다. 그와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다. 병원에서 아이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드류가 생각났다. 이 아이가 혹시 폭력적인 남성으로 변해가면 어떻게 할까. 그때부터 정신적으로 힘들어한다. 아들을 낳자 결국 아들의 눈에 악마가 보인다는 망상에 빠진다.

저자 캐서린 조
저자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이 책은 지난해 3월 미국과 영국에서 영어로 먼저 출간됐다. 그는 가위 눌린 경험을 말하며 “한국인은 잠에서 깨어날 때 몸을 움직이지 못하거나, 숨을 쉬기 어렵거나, 소리를 지를 수 없으면 귀신이 가슴 위에 앉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고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연달아 세 딸을 낳은 뒤 넷째는 아들이길 바랐던 할머니가 또 딸을 낳자 넷째의 이름을 ‘끝남’이라고 지었던 일을 쓰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그는 과거 한국인들의 남아선호사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산후정신증의 원인을 명확히 밝히진 못한다. 자신의 경험을 고백할 뿐이다. 어쩌면 아들에게 지나치게 기대하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그를 힘들게 했을 수도 있다. 폭력적인 남자친구에 대한 고통이 그를 아프게 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남아선호사상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산후정신증은 아이를 지닌 모든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원인보다 치유의 과정일 수도 있다. 그의 남편은 그의 곁을 끝까지 지켰다. 망가진 그의 삶을 되돌린 건 곁에 있는 남편이었다. 그는 책 말미 남편 제임스를 향해 감사의 마음을 고백한다. “당신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의 닻이다. 내 곁을 지켜주고, 병원에서 나와 춤을 춰주고, 내가 당신의 사랑 안에서 언제나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준 것에 감사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출산#망상#산후정신증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