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파도 ‘중국’ 묻어나오는 ‘조선구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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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3월 25일 14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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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 “최소한 역사적 사실에는 근거했어야”
이병태 교수 “드라마 근거로 동북공정? 과잉반응”

드라마 ‘조선구마사’(작가 박계옥, 연출 신경수)와 관련해 역사왜곡 지적이 끝없이 나오고 있다. 이쯤되자 “역사적 고증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 (중국 입장에서) 고증을 잘해놓은 것”이라는 조롱 섞인 비판까지 나왔다.

지난 22일 첫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조선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국형 크리쳐 장르를 표방해 방영 전부터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첫방 직후 대중의 기대감은 분노로 바뀌었다. 태종과 세종 등 역사적 업적이 큰 실존인물을 폄훼하거나 드라마 곳곳에서 중국색이 진하게 묻어나온 탓이다.

음식에 악기·소품까지 중국식…실존인물 폄훼까지


불과 2회 분이 방영될 동안 지적 받은 부분은 상당하다. 양녕대군(박성훈 분)이 중국무술 수련용 대도로 보이는 칼을 사용하거나 엄연히 조선 땅에 있는 기생집에서 중국풍 월병과 피단(새알을 삭혀먹는 중국음식), 중국식 만두 등의 음식이 나왔다.

드라마에 삽입된 일부 OST는 중국 전통 현악기인 고쟁, 고금으로 연주한 곡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연변 말투를 쓰는 놀이패가 농악무를 연주하는 장면도 자칫 농악이 중국 문화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끔 했다. 실제로 2009년 중국은 ‘중국 조선족 농악무’라는 이름으로 한국보다 먼저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바 있다.

실존 인물들에 대한 폄훼도 심각한 수준이다. 드라마 속 태종(감우성 분)이 아버지 이성계의 환시를 보다가 백성들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장면을 연출했고, 충녕대군(훗날 세종·장동윤 분)은 시중처럼 서있는 채로 신부에게 술을 따랐다.

게다가 최영 장군을 두고는 “충신? 하이고, 충신이 다 얼어죽어 자빠졌다니? 그 고려 개갈라 새끼들이 부처님 읊어대면서 우리한테 소, 돼지 잡게해놓고서리 개, 백정 새끼라고 했지비아니”라는 대사까지 나왔다.

드라마 방영 중지 요청→광고계도 빠른 손절


드라마를 향한 비난이 수일째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이럴거면 이방원이 아니라 명나라 태조 주원장을 주인공으로 했어야지”, “선 넘음”,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게 명백하다” 등의 반응이다. 한 누리꾼은 “최소한 핍진성이라는 건 지켜야지. 근본없는 중국식 음식과 건물, 조상 패드립을 날리는 건 전혀 이해불가”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을 향한 ‘책임론’도 불거졌다. 배우들도 작품을 선택하고 연기하는데 있어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드라마 ‘빈센조’에서 중국 제품 PPL이 논란이 됐을 당시 촬영에 임한 송중기 역시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 형성된 바 있다.

청와대 게시판에 ‘역사왜곡 동북공정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즉각 방영 중지를 요청한다’는 제목의 청원 글이 지난 23일 게재됐다. 해당 청원은 게재 이틀 만에 15만 명 이상이 동의한 상태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 광고계도 발 빠른 손절에 나섰다. 호관원과 LG생활건강, 바디프랜드, 쌍방울, 반올림피자샵, 코지마 등은 제작 지원 및 광고를 중단했다. 나주시는 드라마 제작지원 협조를 철회한 상태다.

다만 일각에서는 허구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를 두고 ‘과잉반응’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25일 페이스북에 “이걸 근거로 동북공정한다면 우리에게 좋은 일 아니냐. 얼마나 근거가 없으면 그러냐고 웃어주면 되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과잉반응이야말로 이미 동북공정이 성공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제작사 방송사 진화나섰지만…우려 여전


결국 발등에 불이 떨어진 ‘조선구마사’ 제작사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중국식 소품 지적은)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명백한 제작진의 실수”라면서 “다만 중국 자본이 투입된 드라마는 전혀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실존 인물을 차용해 ‘공포의 현실성’을 전하며 ‘판타지적 상상력’에 포커스를 맞추고자 했으나 예민한 시기에 큰 혼란을 드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사과했다.

아울러 방송사인 SBS 측은 “방송된 1, 2회차 VOD 및 재방송은 수정될 때까지 중단할 것”이라며 “다음주 한 주간 결방을 통해 전체적인 내용을 재정비하겠다”고 전했다.

최근 중국은 막무가내식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펼치고 있다. 김치와 판소리, 한복, 아리랑 등은 물론 세종대왕과 윤동주 등 위인까지 ‘조선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드라마 ‘달이 뜨는 강’ 촬영 중 찍은 평강공주 역 김소현의 한복 사진을 두고서는 “중국 옷을 입어줘서 고맙다”라는 댓글을 집단적으로 남기는 황당한 일을 벌였다. 넷플릭스 등을 통해 전세계인이 볼 수 있는 한국 드라마에는 중국 제품 PPL이 등장하고 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최근 이어지는 동북공정과 드라마 속 역사왜곡과 관련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한국 드라마를 OTT(세계 최대 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통해 전세계인이 시청 가능하다는 것”이라면서 “드라마 바탕이 허구와 상상력 등을 가미한 것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최소한 실명을 거론했다면 기본적인 고증은 거쳐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조혜선 동아닷컴 기자 hs87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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