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날아온 詩 한편에… 2030이 웃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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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대신 스마트기기로 감상하는 ‘젊은 독자들’

“웃음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봄날…금방이라도 속마음을 들킬 것 같은 노랑 짧은 봄날이 노랑노랑 익어간다 화사하게”

출판사 창비의 시 큐레이션 애플리케이션(앱) ‘시요일’이 22일 서비스한 ‘오늘의 시’는 김현서의 ‘봄’이다. ‘웃음’ ‘노랑’ ‘화사’와 같은 시어들이 봄을 맞는 이용자들의 마음을 간질인다. 오늘의 시는 매일 낮 12시 40분 스마트폰 화면에 팝업 창으로 제공된다. 바쁜 일상의 한가운데로 훅 들어온 시 구절에 젊은 독자들이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있다.

시요일은 2030 젊은 독자들이 시를 향유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콘텐츠로 여겨진 시가 디지털과 만나는 지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이용자들은 시집을 펼쳐 시를 읽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그날 분위기에 어울리는 시를 감상하고, 인스타그램에 마음에 드는 구절을 손 글씨로 적어 올린다. ‘시요일’ 기획위원으로 시 큐레이션을 맡고 있는 신미나 시인은 “필사나 캘리그래피 형태로 감상을 표현하는 독자들이 부쩍 늘었다. 밀레니얼 세대는 독자가 단순한 수용의 주체가 아닌 생성의 주체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창비에 따르면 성별과 연령대 등을 밝힌 시요일 유료회원 중 30대(27.4%)와 20대(23.3%)가 가장 많았다. 2030이 꼽는 장점은 시의성과 편의성. 3년째 ‘시요일’을 이용한 직장인 김모 씨(29)는 “시집을 따로 챙기지 않아도 이동 시간에 틈틈이 시를 읽고 메모할 수 있어서 좋다. 그날의 기분이나 상황에 맞는 시를 만날 때면 지친 일상에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2017년 4월 이 앱이 나올 때만 해도 출판계에선 “종이 시집도 팔리지 않는 마당에 즐길 거리가 많은 스마트폰으로 시를 받아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월 5000원(1년 3만 원)의 유료 서비스라는 점도 부담 요소로 여겨졌다. 하지만 서비스 1년 만인 2018년 3월 기준 앱스토어의 무료 앱 다운로드 2위에 올랐다. 현재 이용자 수는 약 12만4000명. 김수현 미디어창비 출판본부 시요일 담당자는 “약 7000명을 제외한 대다수는 앱에서 제공하는 시 일부만 열람할 수 있는 무료 회원이지만, 앱을 통해 시집 구매로 이어지는 수요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시를 즐기는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지만 독자들이 시에서 찾고자 하는 건 변함이 없다. 신 시인은 “예술적 완성도가 있으면서도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를 끌어내는 시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9일까지 시요일에서 가장 많이 읽힌 시는 ‘개안’(최영숙). 4위에 오른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유병록)와 더불어 봄이 주는 설렘과 위로를 담았다. ‘별의 어깨에 앉아’(강은교) ‘있다’(진은영) 등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를 노래한 시들도 인기를 끌었다. 시요일 큐레이션을 맡은 안희연 시인은 “독자들이 장벽 없이 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시 구절을 소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고 설명했다.

자극적인 오락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시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두 시인은 자기 자신을 보살피게 하는 기능이 시에 있다고 말했다. “너무 잦은 감탄은 사실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주파수를 찾듯 자신의 내밀한 언어를 시에서 찾다 보면 무너진 하루도 일으켜 세워진답니다.”(신미나)

“펜데믹 상황에서 시만이 할 수 있는 몫을 고민하다가 고요, 혼자, 다짐, 시작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렸어요. 이번에 ‘안부’라는 키워드로 시요일 시선집 ‘내일 아침에는 정말 괜찮을 거예요’를 출간했는데 모두에게 꽃다발 같은 시집이 되길 바랍니다.”(안희연)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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