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조사로 개인정보 순식간에 전파…완치 뒤에도 ‘성북구 13번 확진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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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염되었다’ 펴낸 서창록 교수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경험을 생생히 기록하기 위해 치료받을 당시 병상에 누워서도 틈틈이 단상을 메모해 뒀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경험을 생생히 기록하기 위해 치료받을 당시 병상에 누워서도 틈틈이 단상을 메모해 뒀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난해 5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발생 당시 방역당국이 수집한 개인정보가 이후에 어떻게 처리됐는지 묻는 사람이 있나요?”

한국인 최초이자 유일한 유엔 시민적·정치적권리위원회 위원인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60)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되짚으며 이같이 말했다. 자신이 코로나19 확진자이기도 했던 서 교수는 방역의 중요성과 의료현장의 긴박함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감했다. 하지만 그는 “방역과 인권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이자 완치자로 경험한 내용을 엮어 에세이 ‘나는 감염되었다’(문학동네)를 9일 출간했다. 책에는 인권 전문가의 시선으로 읽어낸 한국 사회의 면면이 촘촘히 기록됐다.

그는 1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완치 수개월 뒤에도 서울 성북구청 웹사이트에 남아있는 ‘성북구 13번 확진자’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구청에 직접 전화를 걸어 삭제 요청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성북구 13번 확진자’는 그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순간 그의 신분이 된 타이틀.

방역당국은 그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한 구두 조사와 신용카드 결제기록 외에도 얼굴사진을 요구했다. 매장 내 폐쇄회로(CC)TV 녹화 화면과 서 교수의 얼굴을 대조하기 위해서였다. 역학조사를 위한 목적이었지만 ‘거짓말 할 가능성을 의심 받아도 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경험은 서 교수에게 낯설었다. 그는 “성별과 나이, 직업, 동선이 순식간에 언론에 전파됐다. 동선을 제외한 정보들이 방역과 무슨 상관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서 교수가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할 때도 낯선 경험은 이어졌다. 당시 자가 격리 이탈자뿐 아니라 방역수칙을 충실히 이행하는 일반 자가 격리자에게도 이른바 ‘안심밴드’를 채워야한다는 주장이 나왔었다. 서 교수는 책에서 “(자가 격리자는) 범죄에 연루된 것도 아니고 확진을 받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범죄자 취급을 할 수 있는가”라며 “긴급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한국에선 너무 적었다”고 썼다.

책에는 사회에 대한 비판만큼이나 자기반성의 메시지도 담겼다. 서 교수는 지난해 3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체제학회’에 참석한 이후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그는 당시 만난 동유럽 국가 출신 이민자와 중국인 교수를 향해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냈었다고 고백했다. 제목 ‘나는 감염되었다’에는 서 교수 스스로도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자에 대한 혐오 시선에 젖어있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어찌 보면 자신의 치부를 솔직히 드러낸 이유를 묻자 그는 담담히 답했다.

“저도 대중과 비슷한 편견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제 코로나19 감염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 됐으니까요.”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역학조사#개인 정보#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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