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팽’을 재해석한 이 감독…한국 시청자까지 사로잡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8일 12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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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괴도신사가 영국 명탐정의 인기를 뛰어 넘을 수 있을까. 프랑스 추리소설 작가 모리스 르블랑(1864~1941)의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재해석한 넷플릭스 드라마 ‘뤼팽’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8일 공개 직후 랭킹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이 집계하는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오늘의 한국 TOP10 콘텐츠’ 상위권에 랭크되면서 프랑스 드라마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시청자들까지 사로잡고 있다.

드라마 ‘뤼팽’을 연출한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은 “흑인 아랍계 아시아계, 심지어 백인이라도 사회적 
계층에 따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왼쪽 사진). 그의 말대로 흑인인 주인공 아산은 자신의 피부색을 활용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걸이를 훔친다.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뤼팽’을 연출한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은 “흑인 아랍계 아시아계, 심지어 백인이라도 사회적 계층에 따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왼쪽 사진). 그의 말대로 흑인인 주인공 아산은 자신의 피부색을 활용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걸이를 훔친다. 넷플릭스 제공


이 작품을 연출한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45)은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뤼팽은 아주 프랑스인다운 인물”이라고 했다. 영국인 셜록 홈즈가 논리적인 추리 논증으로 사건을 해결해가는 반면,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맞게 감각적으로 대처해나가는 뤼팽엔 프랑스인의 감성이 담겨 있다는 것. 그는 “프랑스인은 무엇이든 아주 강렬하게 느끼고 많이 느낀다”며 “프랑스인을 프랑스인답게 하는 기질은 바로 감각”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프랑스 소설 아르센 뤼팽은 1905년 처음 등장할 때부터 지적인 추리에 기반을 둔 영국 추리소설의 틀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소설에서 뤼팽은 도둑질을 하고, 악당을 목 졸라 죽이는 자유분방한 범법자다. 여러 여자와 염문을 즐기는 바람둥이로 도덕적 관습에 저항한다. 문학계에선 19세기 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프랑스가 전례 없는 풍요와 평화를 누렸던 ‘벨 에포크’가 반영된 작품으로 해석된다.

이번 드라마는 과거 프랑스 배경을 현대로 옮겨온 것에 그치지 않는다.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이라는 현대 프랑스의 논쟁거리를 파고든다. 드라마에서 흑인 주인공 아산이 비싼 양복을 입고 부자처럼 행동하자 사람들은 그를 건드리지 못한다. 청소부로 변장하고 범죄를 저지르려고 할 때도 도둑으로 전혀 의심받지 않는다. 그는 “내가 탐구하고자 한 주제는 초능력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라며 “주인공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종주의를 역으로 이용한다”고 했다. 또 “사회적인 메시지도 담고 싶었기 때문에 지난 세기에 쓰인 소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했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 오마르 시는 부모가 서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 출신이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부잣집에서 일하는 가난한 운전수인 것처럼, 오마르의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각본이 배우의 이야기와 맞아떨어질 때 특정 면모들이 가장 잘 발현된다”며 “(오마르는) 프랑스에서 이민자 2세대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진정성 있게 구현해냈다”고 했다.

주인공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걸이를 훔치는 장면은 별도 세트장이 아닌 루브르 박물관에서 촬영됐다. 루브르 박물관은 촬영 시간에 전혀 제한을 두지 않았다. 도둑 역할을 맡은 오마르가 보안 요원도 없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 앞에서 홀로 있을 정도로 프랑스 사회가 이 작품의 제작을 뒷받침했다. 그는 “가끔은 영감을 얻기 위해 루브르 전체에 나 홀로 있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범죄조직이 의뢰한 물건을 비밀리에 운반해주는 ‘트랜스포터: 엑스트림’(2005년), 괴물 헐크가 등장하는 ‘인크레더블 헐크’(2008년)를 연출한 유명 감독이다. “관객이 프랑스인이나 유럽인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지, 솔직히 미국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볼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어 기쁘다”고 했다.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 인터뷰 전문


―뤼팽을 드라마하기로 한 이유와 제작 과정을 설명해 달라.

“드라마인 동시에 음모와 강도, 액션, 코미디 요소가 많이 녹아있는, 다양한 장르가 섞여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아르센 뤼팽은 프랑스에서 아주 유명한 시리즈 소설이다.

우리는 오마르, 고몽과 함께 뤼팽 캐릭터를 재조명하려고 하면서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맞을지 고심하고 있었는데, 그때 각본가 조지 케이가 ‘오마르가 아르센 뤼팽 자체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리스 르블랑의 책에서 영감을 받아 행동하는 인물을 연기하고, 소설을 하나의 장치로 이용하자’는 흥미로운 발상을 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책을 주고 그 책을 통해 자신이 뭔가를 훔쳤다는 억울한 누명에 대한 뒷이야기를 전해주는 식으로. 이를 최고의 발상이라고 생각하고 집필에 착수했다. 곧 그것이 여러 갈래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더없이 좋은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맞는 방식을 찾고, 그렇게 제작을 결정하게 되었다.

―고전 소설 아르센 뤼팽을 현대의 배경의 드라마 뤼팽으로 바꾸는 데 가장 유의하고 집중했던 점은 무엇인가.


”소설을 그대로 각색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저 아산이라는 캐릭터가 소설과 소설의 정신에서 영감을 받고, 소설 속 인물의 정신과 그 인물이 내보이는 특정 계층이나 어떤 인간 군상에 대한 투쟁 정신에서 영감을 받기를 원했다. 실제 창작도 그렇게 했다. 기존 소설을 길잡이로 활용할 뿐 결코 제약으로 여기지 않았다. 사회적인 메시지도 담고 싶었기 때문에 옛날 옛적 지난 세기에 쓰인 소설인 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에서 멀어져 아산의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그게 더 흥미로웠다. 이것이 예술의 흥미로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다른 예술에 영감을 준다. 마치 예술의 전파 같은 것이다. 이 이야기 자체가 전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책을 전하고, 그 아들이 자라 또 그 자식에게 책을 전한다. 소설의 이야기를 따와서 우리 작품의 형식을 만들었다.“


―뤼팽엔 액션에 집중한 제임스 본드와 지적 능력이 뛰어난 셜록 홈즈의 장점이 모두 녹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뤼팽은 제임스 본드와 셜록 홈즈 중 어떤 인물에 더 가깝다고 보나.

”뤼팽은 둘 다 아니고 둘 다이기도 하다. 뤼팽은 아주 프랑스인다운 인물이다. 제임스 본드와 셜록 홈즈는 굉장히 영국적이지 않나. 어떨 때는 너무할 정도로 영국적이다.

뤼팽은 프랑스적이다. 프랑스인을 프랑스인답게 하는 기질은 바로 감각이다. 프랑스인은 무엇이든 아주 강렬하게 느끼고, 많이 느낀다. 반면 제임스 본드와 셜록 홈즈는 생각하는 타입이다. 뤼팽도 생각을 하긴 하지만. 그들은 뤼팽만큼 느끼지 않고, 뤼팽은 느낀다.“





―루브르 박물관 촬영 장면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차 액션 신과 박물관 내부 액션 등은 별도 제작 세트를 만들어서 촬영했나.

”아니다. 모든 촬영은 100% 루브르에서 진행되었다. 세트를 만들긴 했는데, 복도가 없어서 세트를 만들어 복도 장면을 촬영했다. 하지만 자동차 추격 신이나 다른 액션은 루브르에서 찍었다. 물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약간의 영화적 마법이 들어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장면은 루브르에서 촬영했다.

루브르는 우리 작품의 가장 훌륭한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우리에게 문을 열어 주었고 촬영 시간도 전혀 제한을 두지 않았다. 오마르가 모나리자 앞에 혼자 있어도 아무도 보안 요원을 불러와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우리를 신뢰해 주었다. 다들 안에서 마음대로 걸어다닐 수 있었고 나도 그랬다. 가끔은 영감을 얻기 위해 루브르 전체에 나 홀로 있기도 했다. 그리고 촬영 전이면 루브르의 복도들을 혼자 몇 시간씩 걷곤 했다. 믿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뤼팽의 내적 분장술은 프랑스 내에서의 흑인이라는 설정이 더해져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흑인인 주인공 아산은 루브르 청소부들과 다르지 않은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지만, 경매에 참석할 땐 백인들 사이에서 튀는 인물로 인식된다. 프랑스 사회에서 흑인이라는 위치와 뤼팽을 연결하면서 가장 고민한 지점은 무엇인가.

”내가 탐구하고자 한 주제는 비가시성이다. 초능력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게 되는 것 말이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흑인, 아랍계, 아시아계, 또는 심지어 백인이라도 사회적 계층에 따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정원사나 청소부, 환경미화원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거의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저 한밤중에 쓰레기를 치워주는 유령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명성과 사회적 인정이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아산은 자신의 피부색이 때로 사회적 계층과 연관지어지기도 하면서 발생하는 잠재적 비가시성을 이용한다. 이것을 자신의 무기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는 꼭 인종주의라기보다는, 사회가 어떤 사람은 보지 않기로 했다는 점을 이용한다. 아산의 대사 중에도 있다. “눈길은 줬지만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사람들에게 그가 시야에는 들어왔지만 그와 제대로 눈을 맞추고 어떤 사람인지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우리 작품에서 가장 섬세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주제인 것 같다. 정신적 주짓수랄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종주의를 역이용하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도구를 활용하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흑인인 그가 이목을 끌려고 할 때는 보랏빛 쓰리피스 수트를 입고 루브르로 기세등등하게 걸어 들어간다. 그러면 아무도 그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다. 흑인이 쓰리피스 수트를 입고 레인지로버에서 당당하게 내린다면 분명히 엄청난 부자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왕자이거나 테크 업계의 백만장자거나 거물이거나. 중간 지점이 없는 거다. 우리는 그걸 활용하고 싶었다. 이런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이 주위를 돌아보고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나 차를 주차해주는 발레 주차 요원, 버스 기사의 존재를 알아차렸으면 했다. 그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주연 배우 오마르 시의 부모는 서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다. 그의 모리타니아인 어머니는 집 청소부로 일했고 그의 세네갈인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했다. 오마르 시를 캐스팅한 것이 이 드라마의 주제 의식과 연관이 있나.

”오마르는 프랑스에서 굉장한 스타이며 이 작품 전에도 그랬다. 그래서 오마르를 캐스팅하고 그와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오마르는 오마르이고, 각본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나 상황, 그리고 신장 190cm의 흑인 남성으로 살아가면서 형성된 사회에 대한 인상과 맞아떨어질 때 그의 어떤 면모들이 가장 잘 발현된 것이다.

당연히 모든 것은 오마르를 염두에 두고 썼다. 작품 자체가 오마르를 생각하지 않고 쓴 작품이 아니다. 오마르가 우리가 이 작품을 만들게 된 이유였고 이런 작품을 함께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것의 영감이 되었기에 그는 아주 중요했다. 그는 이 작품에 진실성을 더해주었고, 각본을 쓸 때도 관심을 가지고 아주 좋은 아이디어들을 내주었다. 프랑스에서 이민자 2세대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진정성 있게 구현해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프랑스 드라마로선 처음으로 미국 넷플릭스 Top10이 됐고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다. 소감이 어떤가.

”기분이 좋다. 감독 경력 20년 동안 ‘인크레더블 헐크’, ‘트랜스포터’ 등 많은 영화 작업을 했고 세계 최고의 스타들과 일했다.

그런데 이번에 프랑스로 돌아와 보니, 생전 처음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사인을 부탁해왔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선물을 주기도 한다. 내가 전에 상상하지 못한 방식, 과거의 작품들로는 전혀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사람들과 연결되게 된 것이다. 만들 때부터 특별한 작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건 우리에게 특별한 작품이라는 의미였다. 오마르와 나, 모든 크리에이터들,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렇게 만든 작품을 넷플릭스에 선보였다. 좋은 작품이 많은 스트리밍 서비스니까. 그렇게 올라가 있으면 누군가 봐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관객이 프랑스인이나 유럽인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지, 솔직히 미국이나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봐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모든 국가에서 잘 되고 있다.

열광적인 리뷰를 적어준 평론가에서부터 블로그에 ‘완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재미있었다’, ‘캐릭터가 좋았다’, ‘오마르가 좋았다’, ‘스토리가 좋았다’, ‘연출이 좋았다’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준 개인 시청자들까지 작품을 본 모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솔직히 내게 일어난 적이 없었던 일이고, 그래서 아주 아주 기쁘다. 과거에 상업적인 성공과 비평적인 성공을 모두 거뒀지만 이번에는 매우 다르다. 이건 러브스토리다. 관객들이 캐릭터와 작품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어 기쁘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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