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같이 드실래요?[손진호의 지금 우리말글]

손진호 어문기자 입력 2020-11-29 09:12수정 2020-11-2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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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숟갈이라도 더 먹어라.” 씨도 먹히지 않을 소리임을 알면서도 아뿔싸, 밥상머리에서 불쑥 내뱉고 만다. 밥알을 ‘세고 있던’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바쁘다며 벌떡 일어선다. 조금이라도 더 먹일 요량으로 고봉밥, 감투밥 비스름하게 담아낸 아내의 얼굴은 얼추 울상이 됐다. 그날 눈칫밥보다 못한 집밥을 끼적끼적 먹었다.

집밥은 ‘집에서 만들어’ 가족이 함께 먹는 음식이다.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가족 간 소통과 관계를 확인하는 매개체이다. 요즘 대세가 된 먹방에서도 집밥은 단연 선두주자이다. 이는 거꾸로 집밥의 의미와 부재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 그중 ‘혼족’은 밥집에서 때우듯 먹고 말 때가 많다. 그러니 집밥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간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는 먹거리 문화가 자리 잡아 간다지만 해 먹자니 힘들고, 상을 차려도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도 않는다.

말의 세계에서도 집밥과 식당밥의 처지는 다르다. 집밥은 2016년 표제어에 올랐지만 한 끼 적당히 때우는 성격의 식당밥과 즉석밥은 여태 웹사전에 머물러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밥심이여.” 어릴 적부터 귀 따갑게 들어왔던 터라, 절로 가슴에 새긴 ‘말씀’이다. 한데 이 말을 요즘 젊은이에게 했다간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먹거리가 다양한 데다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세상 아닌가. 그런데 ‘밥의 힘’이라면 밥힘일 듯한데 왜 ‘밥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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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힘’은 어떤 말과 결합해서 뒤에 올 때는 ‘ㅎ’이 ‘ㅅ’으로 변한다. ‘팔의 힘’이 ‘팔심’, ‘배의 힘’이 ‘뱃심’, ‘기운차게 거침없이 말하는 힘’은 ‘입심’이다. 헛똑똑이들이 보람 없이 쓰는 힘은 ‘헛심’이다. ‘밥의 힘’을 ‘밥심’이라고 하는 까닭을 아셨을 줄 안다.

밥심과 집밥엔 공통점이 있다. 비록 늦긴 했지만 둘 다 언중의 말 씀씀이에 힘입어 표제어가 됐다는 사실이다.

‘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밥하느라’ 식기세척기가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여기엔 재택근무와 집밥 증가로 늘어난 설거지 부담을 줄이려는 수요가 한몫했다. 심지어 식기세척기를 ‘식세기 이모님’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코로나19가 낳은 ‘웃픈’ 현상이다.

아 참, ‘밥맛이 없다’ ‘밥맛없다’는 반드시 구별해 써야 한다. ‘밥맛이 없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음식 먹을 기분이 나지 않는다’란 뜻이다. 반면 ‘밥맛없다’라고 붙여 쓰면? ‘아니꼽고 기가 차서 정이 떨어지거나 상대하기가 싫다’는 전혀 새로운 뜻이 된다. “밥맛이야!”와 닮았다. 누군가에게 함부로 해서도, 들어서도 안 될 말이다.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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