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손내미는 건 부끄러움 아닌 용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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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의 김려령 작가,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출간
가족 문제로 힘든 아이들에게 놀이로 소통하는 법 알려주고파
엉뚱하지만 기발한 아이들 모습, 구체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표현
글쓰는 동안 너무 즐거웠어요

김려령 작가는 “아이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걸 보는 게 즐겁다. 우리 집에도 엉뚱한 녀석이 있어서 이 녀석이 한 말을 작품에 그대로 사용하곤 한다”고 했다. 동아일보DB
김려령 작가는 “아이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걸 보는 게 즐겁다. 우리 집에도 엉뚱한 녀석이 있어서 이 녀석이 한 말을 작품에 그대로 사용하곤 한다”고 했다. 동아일보DB
“손을 내밀고, 또 그 손을 잡는 건 부끄러움이 아니라 용기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가난, 가족 문제를 겪는 두 소년이 서로에게 차츰 다가가 손을 맞잡는 과정을 그린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문학과지성사·사진)을 출간한 김려령 작가(49)가 말했다. 75만 권이 판매된 청소년 소설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로 잘 알려진 그가 3년 만에 신작 동화로 돌아왔다. 김 작가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초등학교 5학년 현성이는 철거될 비닐하우스에서 엄마 아빠와 산다. 삼촌에게 속아 집을 날렸기 때문이다. 같은 반 장우는 아빠가 재혼해 새엄마와 서먹하게 지낸다. 둘은 마트에 갔다 우연히 만나 비닐하우스촌을 둘러본다. 화훼단지였지만 이제는 버려진 비닐하우스 하나를 아지트로 삼은 둘은 꼼짝 않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촬영해 올린 동영상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이 조회수가 늘어나고 댓글이 줄줄이 달리자 이를 계속 올린다.

“실없는 놀이 같지만 사실 둘은 치열하게 성장하고 있는 겁니다. 없는 놀이도 만들어내고, 잘 몰라도 함께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알아가는 게 아이들이라는 걸 동영상 올리기를 통해 표현했습니다.”

현성이와 장우는 움츠러들지 않고 담담하게 집안 사정을 털어놓으며 가까워진다. 김 작가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아이들에게 ‘쉽지 않겠지만 지금 즐거워질 수 있는 작은 실마리를 찾아보라’고 하고 싶다”고 했다. 안 그러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것.

“어릴 적 비닐하우스에서 살던 친구가 있었어요. 속상해서 울기도 했지만 놀 때는 누구보다 신나게 놀았어요. 아련하고 유쾌하게 가슴에 남은 친구예요. 힘든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이 그 친구처럼 당차게 견뎌냈으면 해요.”

작품은 결코 우울하지 않다. 그 나이 때 남자아이들이 나눌 법한 실감 나는 대화가 웃음을 자아낸다. 마트에 수제비를 만들 밀가루를 사러 갔다 만난 둘은 밀가루가 강력분, 박력분, 중력분으로 나뉘어 있자 고개를 갸웃거린다.

“얘는 강력한 애고, 얘는 박력 있는 앤가?”(현성)

“수제비는 강력하게 해야 하냐, 박력 있게 해야 하냐?”(장우)

이야기를 더 주고 받다 장우가 “아빠가 요리할 때 박력 넘치기는 한데”라고 하자 둘 다 박력분을 산다(박력분은 주로 과자를 만들 때 쓰고 수제비는 중력분으로 만든다).

둘은 집 이야기를 하며 툴툴거리다가도 컵라면은 싹 비운다. ‘컵라면은 언제나 맛있으니까’라며. 구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묘사 덕에 둘은 실제 존재할 것 같은 아이들처럼 느껴진다.

김 작가는 “먼저 다가갈 수도 있고, 다가오는 친구를 맞이하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고 했다. 이어 “어른들은, ‘너를 위해서’라며 하는 말이 진짜 아이를 위한 건지, 자신이 못한 걸 강요하거나 왜 못하냐고 다그치는 건 아닌지 스스로 물어봤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작품을 쓰는 동안 엉뚱하지만 기발한 아이들을 따라가는 여정이 즐거웠다고 했다.

“현성이와 장우가 내 손을 꼭 잡고 걱정만 하는 저를 안심시켜 주는 것 같았어요.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울타리가 돼 주고 있는지 반성하게 됐죠. 동화는 늘 아이들을 통해 저를 돌아보게 해요. 제가 동화를 사랑하는 이유지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완득이#김려령#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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