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소설가 ‘박사농부’를 만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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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김탁환 지음/328쪽·1만6800원·해냄

“1년만 쉬기로 했다.”

23년간 작업실에서 쉬지 않고 소설을 써내려가던 저자는 어느 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답답함을 느꼈다. 하늘을 보고, 길 위를 걸으며 ‘문장 밖을 쏘다니고 싶었다’고 한다. 강릉 목포 곡성 부산 등의 낯선 마을들을 종으로, 횡으로 정처 없이 다녔다.

그중 그의 발길이 자주 머문 곳은 전남 곡성이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소설가로 살아온 저자는 ‘농부과학자’ ‘박사농부’ 이동현 대표를 만난다. 이 대표는 발아현미를 연구하고 가공하는 농업회사 미실란을 15년째 운영하고 있다. 공통점이 거의 없을 것 같은 저자와 이 대표는 농업과 소설이라는 각자의 영역에서 지키고 싶은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소통하며 깨달음을 얻어간다.

이 대표는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쳐온 우리에게 흙과 동식물로부터 깨달은 지혜를 전한다. 왕우렁이로 잡초를 제거하는 것은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벼가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한다. 또 기후변화, 식량위기 앞에 인간이 좌초되지 않도록 붙들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설파한다.

저자는 소멸해가는 농촌과 농업의 위기 속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쉼 없이 일하는 이 대표를 보며 소설을 쓰는 일과 곡식을 재배하는 일은 ‘반복의 미학’이라는 측면에서 닮았다는 것을 느낀다. 또한 아름다움은 화려한 겉모습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지키는 태도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책 제목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는 거기서 나왔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김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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