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늦잠’ 해프닝 사과…“알람 맞추고 설정 안해”

  • 뉴시스
  • 입력 2020년 6월 2일 14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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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철도원 삼대' 기자간담회

“지난번에 헛걸음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신간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기자간담회에서 한 황석영 작가의 첫 마디는 사과였다.

황 작가는 지난달 28일 예정했던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전날 5·18 행사 참석’과 ‘늦잠’이 불참 이유로 알려졌는데 황 작가는 자신의 불참으로 연기된 기자간담회에서 직접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간담회는 2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렸다.

황 작가는 사과에 이어 배경을 전했다. 간담회 전날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관련 공식 행사의 진행을 맡아 늦은 시간 자택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는 “광주 식구들은 대개 5월 27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날 도청에서 시민들이 진압을 당해서”라며 “당시 20대 청년이었는데 지금 60대인 분들하고 막걸리를 한 잔 했는데 조선 술이 은근히 끈기가 센 지 술이 안 깨서 12시쯤 집에서 쓰러져 잤다. 잘 때 탁상시계 알람을 맞춰놨는데 설정을 안했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탁상시계 설정을) 눌러놨어야 했는데 안 하고 그냥 잤다. 다음날 오전 11시쯤 창비에서 난리가 나서, 후배 작가들이랑 현지에 와서 막 문을 두드려서 나를 깨웠다. 일어났더니 11시. 그렇게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취재 차 간담회장을 찾았다가 연기 통보를 받고 돌아서야 했던 취재진들을 마주하는 상황이 퍽 민망했던 모양이다. 멋쩍은 듯 하면서도 미안함을 머금은 표정이었다.

화두는 황 작가의 신작 관련된 것으로 넘어갔다.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는 일제 강점기부터 21세기까지 100년이란 시간 동안 한 집안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다. 4대손인 주인공이 고공농성을 하면서 철도노동자였던 증조부부터 조부, 아버지의 삶을 떠올린다.

황 작가는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0대국’ 이런 얘기를 할 정도로, 근대화를 통해 산업사회에 진입했는데 이 산업 노동자를 한국 문학에서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이 없다. 그 부분이 빠져있다”고 설명했다.

황 작가는 “공장 노동자 뿐 아니라 우리가 다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데 이게 한국 문학에는 빠져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대하소설도 거의 대부분 농민을 위주였다”며 “그래서 그걸 좀 채워넣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부연했다.

공백을 지적할 때는 아쉬움이, 공백을 채우고자 했음을 밝힐 때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묻어났다.

황 작가는 “작가는 은퇴기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죽을 때까지 써야 한다. 그게 작가가 세상에 가지는 책무”라며 “기운이 남아있는 한 죽을 때까지 써야 한다. 마구 쓰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길을 가고 새로운 작품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가 ‘장길산’을 쓰는 동안 19번을 옮겨 다녔다. 이번 소설도 보따리 싸고 나와서 젊을 때처럼 하루 8~10시간 앉아서 작품을 썼다. 확실히 기운이 달리고 기억력도 떨어지긴 했다. 등장인물 이름이 계속 혼동돼서 후반부에는 이름이 막 바뀌고 그랬다. 그래서 대단히 고생했다”고도 했다.

‘철도원 삼대’는 제목 그대로 화자의 아버지부터 위로 삼대에 걸쳐 모두 철도노동자로 등장한다.

황 작가는 철도노동자를 소재로 한 이유에 대해선 “철강 산업은 근대 산업사회를 상징한다. 노동자들의 핵이라고도 한다. 서구에서는 철도노조가 굉장히 세고 역사가 굉장히 깊다. 프랑스는 거의 산별노조의 맏형이라고 할 정도”라며 “그래서 ‘근대 산업사회의 중심이 되는 노동자는 철도노동자다’라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원을 배경으로 한 사연도 전했다.

황 작가가 1989년 방북했을 때 그곳에서 만난 서울 출신 백화점 부지배인 노인과의 대화가 계기였다.

황 작가는 “키가 크고 지식인 유형의 노인이었는데 서울말을 쓰더라. 옛날 서울사투리를 쓰기에 고향과 동네를 물었더니 나와 같은 영등포라고 하더라”며 “아버지 또래였던 그와 대화를 나눴는데 나이 차이는 크지만 같은 추억을 갖고 있더라. 따로 시간을 내어 5~6시간 얘기하면서 감동도 받고 아주 재밌었다. 그 사람 과거를 듣고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355일 동안의 CCTV 철탑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김용희씨 사례를 언급하며 노동자의 투쟁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황 작가는 “뉴스에서 봤다. 그런데 아직도 (농성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어필할 방법이 그것 밖에 없다. 참 안 됐다”며 “언론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한 1년은 넘어야 오래 있었다며 돌아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나아진 건 있다. 그냥 내버려두고 해보라는 것도 다행이다. 옛날에는 강제집행해서 끌려가고, 떨어져 죽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시간이란 게 우주의 시간에서 보면 먼지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조금씩 나아진다. 제가 느낄 수 있다. 20~30대 느꼈던 한국과는 거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그리고 더 좋아져야한다”고 보탰다.

간담회에서는 방북했던 작가로서 현 시대 남북문제에 대한 견해, 한국 문학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입장 등 다양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그럼에도 간담회 마지막 발언은 역시 ‘사과’였다.

황 작가는 “제가 예상외로 (지난 주 간담회를) 펑크 내는 바람에, 그게 더 (신작) 홍보가 됐다”며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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