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이 글에 시비 걸려는 자, 썩 나서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0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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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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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에 태양이 빛나고 대지에 청풍이 불도다’로 시작하는 동아일보 창간사는 1년 전 3·1운동 때 울려 퍼진 기미독립선언서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먼저 세계의 흐름을 읽는 눈이 같았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하고 도의의 시대가 내하도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창간사에는 ‘강력에 기본한 침략주의와 제국주의는 권리를 옹호하는 평화주의와 정의를 근본한 인도주의로 전환코자 하난도다’라는 표현이 나오죠. 독립선언서의 ‘신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에 투사하기 시하다도’는 창간사 속의 ‘신시대의 서광이 멀리 수평선상에 보이도다’와 사실상 같습니다.

또 독립선언서가 ‘민족의 항구여일한 자유발전을 위해’ 독립을 외친 것처럼 창간사 역시 “자유와 발달의 먼 길을 혼신의 힘으로 가겠다”고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은 창간사의 3대 주지인 △조선민중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노라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와 틀이 동일합니다. 이렇듯 동아일보 창간사 속에는 ‘3·1운동의 정신’이 곳곳에 녹아있습니다. 3·1운동 때 우리 민족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 덕분에 동아일보가 창간됐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 창간사는 주간이었던 당시 26세의 청년 장덕수가 썼습니다. 부산에서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마무리했다고 하죠. 비록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썼어도 내용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지 “이 글이 잘못됐다고 하는 이가 있으면 싸움이라도 하겠다”며 강한 자부심을 내보였다고 창간 기자 한 사람이 증언을 남겼습니다. 자신감 덕분일까요? 창간사는 최남선의 ‘기미독립선언서’, 한용운의 ‘조선독립의 서’와 함께 한국 근현대 3대 명문으로 꼽힙니다.

장덕수 주간은 1916년 일본 와세대대학 정치경제학과를 2등으로 졸업했습니다. 고학으로 돈을 벌어가며 공부했는데도 우수한 성적을 거뒀지요. 그뿐만 아니라 장 주간은 웅변으로 일본인들을 제압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전일본대학생웅변대회에 나가 ‘동양평화와 일본의 지위’라는 주제를 목청 높이 외쳐 일본 학생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죠.

1919년 11월에는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東京)에서 이 일본어 실력으로 조선이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당당하게 펼쳤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몽양 여운형의 독립 주장을 통역하는 장덕수의 웅변에 압도당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아일보 창간사를 소리 내 읽어보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장 주간이 웅변가답게 글의 호흡을 조절한 것 같습니다.

3대 주지는 1920년 1월 발기인총회 직후 회사 고위급 인사들이 모여 정했습니다. 첫 번째인 ‘조선민중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노라’는 4개월 뒤 ‘조선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노라’로 바뀝니다. 창간 시점에 ‘민족’을 분명하게 내세울 수 없어서 일단 ‘민중’을 앞세웠던 것이었죠. 두 번째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에서 ‘민주주의’는 당시 일본에서는 잘 쓰지 못하는 용어였습니다. 주권이 천황에게 있다는 일본에서는 대신 ‘민본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했죠. 세 번째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는 일제에 국토를 빼앗겼지만 한국인의 정신만은 잃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3대 주지는 100년이 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간사 끝부분에는 중국 고전인 주역(周易)의 한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各正性命(각정성명)하야 保合大和(보합대화)하는’은 주역 건괘(乾卦)에 있는 ‘乾道變化, 各正性命, 保合大和, 乃利貞’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각각 성명을 바르게 해 큰 조화를 보전하고 합한다’는 뜻이죠. 새 시대에 대한 갈망은, 200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가 봅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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