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의 풍운아 이세돌 “한판 잘 즐기다 갑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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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프로기사 마감 “다시 태어나도 바둑 즐길 것”

이세돌 9단이 21일 한돌과의 대결이 끝난 뒤 인터뷰하고 있다. 이 9단은 이날 24년여의 프로기사 생활을 압축한 영상을 보다가 살짝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뉴스1
이세돌 9단이 21일 한돌과의 대결이 끝난 뒤 인터뷰하고 있다. 이 9단은 이날 24년여의 프로기사 생활을 압축한 영상을 보다가 살짝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뉴스1
“한판 잘 즐기다 갑니다.”

21일 인공지능(AI) 한돌과의 은퇴기 마지막 대국이 끝난 뒤 이세돌 9단(36)은 24년여의 프로기사 생활을 마감하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이 9단은 이날 전남 신안군 엘도라도리조트에서 열린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한돌’ 3번기 최종국에서 181수 만에 불계패했다. 치수는 1국 때와 마찬가지로 이 9단이 2점을 놓고 덤 7집 반을 주는 것이었다.

1국이 한돌의 실수, 2국은 이 9단의 착각으로 일찍 승부가 났지만 3국은 초반 우하귀에서 치열한 수상전이 벌어지며 손에 땀을 쥐는 묘수 대결이 펼쳐졌다.

한돌이 먼저 백 39로 1선의 묘수를 띄우자 이 9단은 흑 40을 선수한 뒤 한돌이 예측 못한 42를 선보였다. 흑 42가 놓이자 이 9단의 승률은 70%대 후반에서 85%까지 육박해 승리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흑 64, 66의 팻감이 작았고, 흑 102마저 실수여서 승률이 50% 미만으로 떨어진 뒤에는 한돌의 완벽한 마무리가 돋보였다.

이 9단은 대국 후 인터뷰에서 “한돌이 접바둑에서는 아직 실력이 미흡한 것 같다. 실력이 나보다 좋은 후배였다면 더 좋은 승부를 펼쳤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승부사의 길을 걸으며 오늘을 비롯해 매 순간마다 행복하고 의미 있었다”며 “다시 태어나면 프로기사가 또 된다는 건 장담할 수 없지만 분명 바둑을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

1995년 입단한 이 9단은 통산 1324승 577패로 69.7%의 승률을 기록했다. 2000년 배달왕전에서 첫 국내 기전 우승을 달성했고, 2002년 후지쓰배에서 첫 세계 기전 우승으로 정상급 기사 반열에 올랐다. 그는 국수전 2연패 등 국내 기전 32회 우승, 세계기전 18회 우승 등 모두 50회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2014년 그는 라이벌인 중국 구리(古力) 9단과의 10번기 대결에서 승리하는 등 14억여 원을 상금으로 벌어들이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의 바둑 인생에서 하이라이트는 2016년 알파고와의 대결. 비록 1 대 4로 패했지만 4국에서 백 78이라는 ‘신의 한수’로 승리하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후 인공지능과의 맞바둑에서 승리한 유일한 기사가 될 것이라는 예언은 그대로 실현됐다. 그는 당시 “이세돌이라는 기사가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 등의 어록으로 화제가 됐다.

반면 기사 생활 도중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3단이 된 뒤 당시 승단대회가 의미 없다며 불참해 논란을 불렀으나 결국 2003년 승단대회가 폐지됐다. 2009년 한국기원 프로기사회와 상금 출연금을 놓고 갈등을 벌인 끝에 6개월여간 휴직을 했으며, 이번 은퇴에도 그 문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은퇴에 대해 “예전에 ‘바둑이 인생이다’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은퇴하니까 바둑이 인생의 절반 정도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은퇴 후 계획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은퇴기를 통해 그는 대국료 1억5000만 원과 1국 승리 수당 5000만 원 등 2억 원을 벌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이세돌#은퇴#한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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