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마다 꾹꾹 눌려 담겨 있던 감정이 폭발한다. 일제강점기 한 청년이 쓴 시는 수십 년이 지나 무대 위에서 울부짖음으로 다시 태어난다.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는 조국의 참담한 현실에 괴로워하던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생애와 시적 고뇌를 춤과 노래로 풀어낸 작품이다.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비롯한 유명 작품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성한 뒤 대중적 멜로디를 입혔다. 2012년 초연부터 사랑받고 있으며, 올해는 라이브 밴드가 넘버를 직접 연주해 울림을 더한다.
가장 몰입감이 넘치는 부분은 배우가 시를 토해내는 장면. 이 순간 모든 배경음악이 사라지고 배우는 ‘팔복’ ‘서시’ ‘별 헤는 밤’ 등을 원문 그대로 읊조리거나 소리친다. 감옥 안에서 쓰러진 채 괴로워하며 시를 소리 내어 읽기도 한다. 대본을 집필한 한아름 작가는 “윤동주 시인의 유족이 시에 곡을 붙이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고, 저 역시 윤 시인의 시는 멜로디 없이 그대로 읽어야 서정성이 살 것 같다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실존인물을 다룬 작품이 그렇듯, 긴 생애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주요 사실이 나열식으로 짧게 언급되거나 배우에 따라 일부 시어와 대사의 전달력이 떨어지는 점은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감동이 짙은 때문인지 막이 내린 뒤 눈물을 닦느라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잊혀선 안 되는 일들을 예술과 감동으로 복습시켜 주고 싶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박영수, 신상언, 김도빈, 강상준 출연. 1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3만∼9만 원. 8세 이상 관람가. ★★★☆(★ 5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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