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그로페가 묘사한 ‘폭우’, 진짜 빗소리와 비교해보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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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돌아왔군요. 예전에 브람스 가곡 ‘비의 노래’를 소개한 바 있죠.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가 작품 속에 폭풍우를 즐겨 집어넣는다는 얘기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비를 묘사한 음악은 생각 외로 적습니다. 우리는 ‘비’에서 호젓함을 느끼며 그 분위기를 즐기기도 하지만, 유럽인 대부분은 무조건 햇살을 반기는 편인 듯합니다.

유럽 밖으로 나와서 ‘비 음악’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미국 작곡가 퍼디 그로페(1892∼1972·사진)는 모음곡 ‘그랜드 캐니언’ 마지막 다섯 번째 악장을 ‘폭우(Cloudburst)’라는 제목으로 장식했습니다. 제목 그대로 예사 비가 아닙니다. 충격음과 같은 짧은 음표와 피아노가 먼 곳의 뇌우를 묘사하는 듯싶더니, 이윽고 모든 악기가 총동원되어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둔중한 팀파니의 타격은 지평선 곳곳을 때리는 벼락을 연상시킵니다.

디지털 녹음 초기였던 1987년, 미국 음반사 텔락은 흥미로운 음반을 내놓았습니다. 에릭 컨즐 지휘로 신시내티 팝스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그랜드 캐니언’ 모음곡으로, 평범하다면 평범한 음반이었지만 마지막 트랙에는 다른 데 없는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미국의 대평원에서 녹음한 비바람 소리와 천둥소리를 오케스트라 연주와 조합한 것입니다. 효과적인 음향을 얻기 위해서 비바람과 천둥 자체도 각각 다른 날짜에 녹음했습니다. 녹음 자체보다도 기다리는 고생이 심했을 듯합니다.

이렇게 나온 음반에는 ‘실제 천둥소리가 들어 있음. 소리 크기 주의!’라는 경고문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악단이 녹음한, 실제 대포 소리가 들어 있는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과 함께 이 음반은 오디오 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죠. CD 외에 두 음반의 LP는 더 주목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저음의 양 때문에 고급 오디오가 아니면 바늘이 튀어서 재생을 못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랜드 캐니언’ 모음곡에는 이 곡 외에도 아름다운 노을을 묘사한 ‘일몰’ 악장을 비롯해 매력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요즘에는 무료로 제공되는 인터넷 스트리밍 음원으로도 위에 소개한 음반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퍼디 그로페#그랜드 캐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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