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불러온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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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샤를로테 링크 지음·강명순 옮김/592쪽·1만4800원·밝은세상

영국의 은퇴한 강력계 형사 리처드 린빌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면서 책은 시작한다. 역시 형사인 그의 딸과 동료들은 슬픔에 잠긴 채 죽음의 배후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단서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수사가 지지부진하는 동안 리처드의 지인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된 채 발견될 뿐이다.

추리소설은 보통 퍼즐 놀이하듯 읽게 마련이다. 책을 읽는 동안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낼 퍼즐 조각을 얻어내기 바쁘다. 이 책 역시 흔한 ‘의문의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은 추리소설이지만, 여느 책과 다른 점이 있다. ‘누가 범인인가’보다 범인을 찾아 헤매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거다.

여태껏 변변한 친구 한 명 없이 살아온 리처드의 딸 케이트,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렸던 경찰 케일럽 헤일, 장애가 있는 동생을 돌보며 사는 여형사 제인…. 이들 모두 명석한 두뇌를 뽐내는 여느 추리소설 속 명탐정들과는 거리가 멀다. 남들 눈에 부족한 듯한 삶을 사는 세 사람은 각기 수사에 뛰어들어 저마다의 방식으로 답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범인보단 오히려 자신과 주변인들을 새롭게 발견해 간다. 딸 케이트는 아버지 리처드 형사가 감췄던 비밀을 알게 되고, 케일럽 역시 동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맞닥뜨린다. 내 주변 인물들에게 어떤 상처가 있었고,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어떻게 소리 없이 커다란 분노와 증오심을 키웠는지 지켜보게 된다. 소설 중간중간 그려진 끔찍한 살인 장면보다도 더 무서운 대목은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인간의 이기심과 타인에 대한 몰이해를 새삼 확인하게 될 때다.

책은 1985년 ‘크롬웰의 꿈, 또는 아름다운 헬레나’로 데뷔하며 독보적인 역량을 보여온 독일 작가 샤를로테 링크가 썼다. 섬세한 심리묘사와 긴박감 넘치는 짜임새 덕분에 독일 내에서 팔린 그의 책만 모두 2500만 부에 달한다. ‘속임수’ 역시 2015년 독일에서 발간된 뒤 슈피겔이 집계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속임수#샤를로테 링크#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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