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춤추듯 요동치는 손글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글씨 하나 피었네/강병인 지음/248쪽·2만5000원/글꽃

 한글은 소리를 담아 만든 문자다. 그럼에도 단어의 형상에서 언뜻언뜻 품은 의미의 이미지가 묘하게 읽힐 때가 있다. 하지만 글 쓰는 이가 의도적으로 글자의 모양새를 통해 뜻을 드러내려 할라치면 십중팔구 어설퍼 보인다. 허다한 문구가 ‘캘리그래피’(손으로 쓴 그림문자)라며 여기저기 내걸리지만 눈길을 오래 붙드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 책의 저자는 1990년대 말부터 한글 붓글씨와 디자인을 접목한 캘리그래피 작업에 몰두해 온 유명 손글씨 디자이너다. TV드라마 ‘미생’과 영화 ‘의형제’의 타이틀, 소주 ‘참이슬 프레시’의 브랜드 레이블 등이 그가 움직인 붓 끝에서 빚어졌다. 그는 한글에 ‘의미적 상형성’이 숨어 있다는 신념의 근거를 자신의 손글씨 작품을 통해 차곡차곡 쌓아 왔다.

 그가 써 내린 ‘꿈’은 춤추듯 요동친다. ‘술’은 호방하게 흘러 넘어가 감긴다. ‘밥’은 꾹꾹 담겨 푸짐하고 ‘춤’은 날렵히 휘돌아 번진다. ‘눈’은 포근하게 쌓여 녹아들고 ‘숲’은 아늑히 품어 감싼다. ‘달’은 휘영청 떠돌아 흐른다.

 “달의 글꼴을 활자로 보면 직선적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달’ 하고 발음을 해 보면 느낌이 둥글둥글하다. 그 소리가 둥근 달 모양과 닮았다. 모음 ‘ㅏ’에서 가로 획을 점으로 표현해 달이 가진 둥근 느낌을 전하려 했다.”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며 들여다보고 있자니 미간과 뒷머리가 쉴 틈을 얻은 듯 편안해진다. 2014년 절판됐던 같은 제목의 책을 거지반 다시 써 묶었다. 무언가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바로 그 무언가다울 때임을 확인시킨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글씨 하나 피었네#강병인#손글씨#한글#캘리그래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