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음모론 단골소재 CIA 뒷얘기, 그것이 사실이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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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냉전: CIA와 지식인들/프랜시스 스토너 손더스 지음/유광태, 임채원 옮김·776쪽/3만7000원·그린비

미국 중앙정보국(CIA) 문화 선전전의 핵심이었던 마이클 조셀슨(왼쪽)과 세계문화자유회의의 ‘간판’ 인 작곡가 니콜라스 나보코프와 그의 아내 마미클레르. 그린비 제공
미국 중앙정보국(CIA) 문화 선전전의 핵심이었던 마이클 조셀슨(왼쪽)과 세계문화자유회의의 ‘간판’ 인 작곡가 니콜라스 나보코프와 그의 아내 마미클레르. 그린비 제공
 솔직히 말하련다.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마주쳤다면? 아마 안 골랐으리라. 미안한 말이지만 겉모습이 좀 ‘구리다’. 너무 두껍기까지. 막상 읽어 보면 흥미롭단 말도 차마 못 하겠다. 냉전 시대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주도로 이뤄진 문화 선전전을 다뤘는데, 방대하고 디테일해서 문외한 입장에선 상당히 버겁다.

 그런데 이 책은 왠지 쓰윽 빠져들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CIA의 첩보전을 관람하는 재미는 없지만, 이들이 얼마나 치밀하고 넓게 그물망을 짜 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음모론에나 나오던 얘기가 진짜 현실이었던 거다.

 영국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역사학자인 저자가 특히 주목한 인물은 마이클 조셀슨. 에스토니아 유대인 출신으로 미군이 된 그는, CIA에 합류한 뒤 서구의 문화 선전전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성장한다. 그가 주도해 만든 민간단체가 ‘세계문화자유회의’(1950∼67년)다. 세계 35개 지부(한국에도 있었다)를 둔 이 단체는 수많은 세미나 전시회 음악제를 개최했다.

 놀라운 건 잭슨 폴록과 버트런드 러셀, 조지 오웰, 해나 아렌트, 아서 밀러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당대 지성들도 이 단체(혹은 CIA)와 직간접적으로 연을 맺었단 점이다. 그들이 이런 정황을 인지했건 아니건. CIA는 엄청난 금전과 막강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들을 입맛에 맞게 활용했다. 물론 그들이 ‘선전선동의 나팔수’는 아니었지만, CIA의 큰 그림 속에서 움직여졌다. 조셀슨과 그의 동료들은 그림자 속에서 이를 설계하고 지휘했다.

 요즘 시국에 이런 얘기가 관심을 끌까. 21세기 한반도에선 더한 일도 벌어졌는데. 그나마 CIA는 그들 나름대로 정당성을 갖추고 주도면밀하기라도 했건만.

정양환기자 ray@donga.com
#문화적 냉전#프랜시스 스토너 손더스#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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