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개념의 그물망 헤쳐 나가는 실타래 역할 기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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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출간 ‘현대철학 사전’ 5권, 11년에 걸쳐 완역한 이신철 박사

‘현대철학 사전’ 1∼5권을 11년에 걸쳐 완역한 이신철 박사. 이 박사는 “이 사전의 의미와 기여를 우리 학계가 잘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섭섭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신철 박사 제공
‘현대철학 사전’ 1∼5권을 11년에 걸쳐 완역한 이신철 박사. 이 박사는 “이 사전의 의미와 기여를 우리 학계가 잘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섭섭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신철 박사 제공
 “방대하고 가닥을 찾기 어렵게 얽혀 있는 개념들의 그물망을 독자들이 독해할 때, 이 사전이 미로를 헤쳐 나가는 ‘아리아드네의 실(그리스 신화에서 미궁을 빠져나오게 돕는 실)’을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1년에 걸친 작업 끝에 ‘현대철학 사전’ 1∼5권(도서출판b·사진)을 최근 완역한 이신철 박사(52)의 목소리는 가벼웠다. 그는 일본 고분도(弘文堂) 출판사가 1992∼2000년 낸 ‘칸트사전’ ‘헤겔사전’ ‘맑스사전’ ‘니체사전’ ‘현상학사전’을 거의 혼자 힘으로 모두 우리말로 옮겼다. 5권 합계 3500여 쪽, 원고지로 4만 장에 이르는 양이다.

 2009년부터 한국에서 차례로 출간된 이 사전들은 4700여 개의 표제어를 담고 있다. 칸트 헤겔 등의 독일 철학을 전공하는 석·박사 과정 학생들은 연구를 시작할 때 먼저 이 사전에서 주제와 관련된 항목을 찾아보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14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 박사는 일본 철학계 학자층의 두꺼움이 부럽다고 했다. “헤겔사전 필진이 약 100명, 칸트사전이 약 150명입니다. 이들 모두 주제와 관련된 단행본이나 좋은 논문을 썼는데, 같은 독일 관념론 연구자임에도 겹치는 이가 한 명도 없어요.”

 이 박사는 “서양 철학을 앞서 수용한 일본의 역량이 단절 없이 축적된 것 같다”며 “대부분의 집필자들이 유학파가 아니라 일본에서 학위를 딴 이들”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가 사전을 번역하게 된 건 헤겔 철학 전공자로 일본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연세대 철학과 81학번인 그는 대학 시절 일본어로 된 유물론 철학, 레닌주의 서적 등을 독학하면서 일본어를 익혔다고 한다. “당시 일본어 책을 100권 넘게 읽었던 것 같아요. 그게 10년 넘는 이 번역 작업의 단초가 될 줄은 몰랐지요.”

 원래는 헤겔사전만 번역할 계획이었지만 칸트사전까지 하겠다고 이 박사가 욕심을 냈고, 나머지 사전들도 번역이 잘 진척되지 않아 차례로 덜컥 맡게 됐다고 한다. 5권 중 ‘맑스사전’은 ‘수유너머’의 오석철 연구자와 공역했다.

 최근 KAIST에서 강의를 시작한 이 박사는 2000∼2009년에는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등에서 한국에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인간 중심 철학’ 연구를 도왔다고 했다. 그는 “황장엽 선생은 봉건적 수령 절대주의인 지금의 주체사상과 달리 자신의 철학은 민주주의 사상이라고 강조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번 사전을 번역하면서 우리 학계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반영하고, 일부 용어는 통일하는 등 일관된 체계를 갖추려 했다고 말했다. 일본어 저본에서 동일한 용어를 칸트사전에는 ‘초월론’으로, 헤겔사전에는 ‘선험론’으로 쓰여 있는 것을 번역본에서는 ‘초월론’으로 통일했다. 그는 “한 사전에도 100명 이상의 필진이 참여하다 보니 같은 용어가 달리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며 “용어의 차이에 따른 불편함과 왜곡을 없애고 독자가 전체를 통일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조감도를 그릴 수 있도록 애썼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헤겔#철학#초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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