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화가·소설가·건축가가 지은 소장하고 싶은 ‘글의 집’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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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픽션/김중혁 정유미 이정환 오영욱 문지혁 문지욱 지음/182쪽·1만5000원/스윙밴드

 “이야기를 시작하는 가장 까다로운 방법은 집을 먼저 짓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살지 모르는데 집부터 지으려니 힘들 수밖에 없다.”

 소설가 김중혁 씨가 쓴 작가 후기의 이 문장이 역설적으로 책의 맹점을 설명한다. 인쇄될 형태와 분량을 먼저 정해 놓고 문장 또는 이미지를 지어내 채워 넣는 작업은 언제나 곤혹스럽다.

 저자들이 그런 수고로움을 감내할 만큼 흥미로운 기획임은 틀림없다. 북 디자이너 경력을 가진 소설가, 애니메이터, 일러스트레이터, 건축가, 소설가와 만화가 형제가 각각 32쪽 분량의 자유로운 창작을 맡았다

 재기 넘치는 작가들을 끌어 모아 엮은 저술이야 이미 넘쳐난다. 이 책의 특징은 제본 직전의 인쇄된 전지(全紙)를 묶어 페이퍼백 판과 함께 제공하는 스페셜 에디션(4만8000원)의 존재다. 편집자는 “엄청난 소음으로 가득한 인쇄소 안에서 잉크를 말리는 하루 남짓 시간 동안만 세상에 머무는 종이를 경험 가능한 사물로 붙잡아 두기 위해 기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게으른 독자 처지에서 그 낱장 인쇄물을 통해 “인간에 의해 창작된 정신의 세계가 물질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최초의 감동적인 장면”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출판업 관계자에게는 흥미로운 실험의 결과물로 읽힐 듯하다. 건축가 오영욱 씨의 후기처럼 “틀에서 벗어나는 용기는 굉장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의 글과 그림은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어떤 식으로 누울 자리를 살펴야 하는지 보여준다. 이야기 각각은 차지다. 주말 카페에 앉아 훑어 넘기기 알맞다. 페이퍼백 판만 별도로 판매하지 않는 점은 아쉽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하우스 오브 픽션#김중혁 정유미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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