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키다리 아저씨’ 신성록-이지숙의 달달한 ‘케미’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9월 2일 05시 45분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에서 키다리 아저씨 ‘제르비스 펜들턴’ 역을 맡은 신성록(왼쪽)은 훤칠한 키와 지적인 이미지, 독특한 유머감각으로 고아 소녀 제루샤 애봇(이지숙 분)을 후원하는 귀족청년의 역을 잘 소화했다. 사진제공|달 컴퍼니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에서 키다리 아저씨 ‘제르비스 펜들턴’ 역을 맡은 신성록(왼쪽)은 훤칠한 키와 지적인 이미지, 독특한 유머감각으로 고아 소녀 제루샤 애봇(이지숙 분)을 후원하는 귀족청년의 역을 잘 소화했다. 사진제공|달 컴퍼니
■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키다리 아저씨’는 ‘돈키호테’같은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대충 줄거리를 아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완독을 했다는 사람은 드물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마냥 키다리 아저씨도 그저 ‘고아 여자 아이를 뒤에서 그림자처럼 도와주는 큼직한 우산 같은 훈남’ 정도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키다리 아저씨의 이미지는 멜로드라마와 순정만화의 남자 주인공으로 수없이 변주되며 평범한 남자들의 기를 팍팍 죽여 놓았다.

신성록(34)은 요즘 키다리 아저씨다. 원래 키가 크기도 하지만 실은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에서 키다리 아저씨 제르비스 펜들턴으로 출연 중이다. 키다리 아저씨와 키다리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대학에 진학하는 당찬 고아 소녀 제루샤 애봇, 딱 두 명만 등장하는 ‘혼성 2인극’이다.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소극장 공연이다.

신성록의 소극장 작품은 오랜 만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2005)’, ‘김종욱 찾기(2008)’ 같은 작품들이 있긴 했지만 신성록의 출연작 리스트를 보면 몬테크리스토, 마타하리, 엘리자벳, 잭더리퍼, 영웅, 카르맨 등 대극장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신성록의 상대역인 제루샤 애봇은 이지숙(32)이 맡았다. 두 사람을 무대에서 보는 순간 이 작품에 왜 신성록이 캐스팅되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바로 키다!

그야말로 키다리 아저씨에 걸맞은 외형적 조건을 갖춘 배우가 신성록이다. 그의 키는 190, 185 등의 설이 있지만 정확히는 187cm이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더 커 보인다. 고등학교 시절에 농구선수를 한 데다(동생은 전 프로농구선수 신제록이다) 지금도 피트니스 마니아다. 근육으로 뭉친 몸 덕분에 가뜩이나 큰 키가 더 커 보인다.

여자배우치고 딱히 아담한 키도 아닌 이지숙이 신성록과 무대에 나란히 서면 그야말로 키다리 아저씨의 보호본능을 용솟음치게 만드는 귀엽 발랄한 아가씨로 변모하게 된다.

신성록은 문학적 재능을 지닌 고아 소녀를 돕다가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사랑에 젖어 들어가는 콧대 높은 귀족청년의 연기를 잘 풀었다. 꽤 날카로운 인상을 갖고 있지만, 신성록은 자신만의 독특한 유머문법을 가진 배우다. 제루샤 애봇의 편지를 받아들고 바늘 하나 안 들어갈 듯했던 냉정함이 무너지는 모습에 객석이 빵빵 터졌다.

거꾸리와 장다리 같은 연인이지만 두 사람이 보여주는 ‘케미(연인 간의 화학반응)’는 향긋하고 고소했다. 내내 받기만 하고, 고마워하고, 때로는 휘둘려야 했던 제루샤가 막판에 제르비스의 구애를 얻어내는 장면은 통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달랑 두 명만 등장하는 2인극이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그래서인지 어린이 관객도 제법 눈에 띈다.

사족 에피소드 하나. 이번 작품에서는 키 덕을 톡톡히 보고 있지만 신성록에게 큰 키가 마냥 해피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신성록은 신인 때 헤드윅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진 일 있다. 탈락사유는 “헤드윅을 하기엔 너무 키가 크다”였다고 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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