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상/우지희]입사 동기, 동료와 친구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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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어느 봄날이었다. 입사 동기 중 한 명이 퇴사를 하게 돼 송별회를 하러 다같이 모인 자리였다. 남편의 해외지사 발령 때문에 회사를 떠나게 된 그녀를 아쉬워하던 그 밤에, 나는 구석에 앉아 잠시 술잔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모인 동기들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한동안 보기 힘들게 된 예비 퇴사자의 앞날을 응원하는 모습과 더불어, 삼삼오오 모여 각자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30대 남녀들의 평범한 저녁 식사가 한창이었다.

임산부 동기에게 자신의 가족계획을 공유하며 조언해 주는 이, 어제 본 TV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며 깔깔대는 이, 묵묵히 빈 잔에 술을 따라주는 이, 잘 풀리지 않는 연애에 대해 푸념을 하고 그에 맞장구를 치는 이, 해외 출장으로 누적된 피로의 고충을 토로하는 이들을 보며 문득 우리가 참 오랫동안 함께 나이를 먹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20대 중반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어느새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허리를 담당하는 중간급이 되도록 매일 하루에 8시간 이상을 함께 보내온 것이었다.

그 세월 동안 우리는 꽤 많이 변했다. 나는 사투리를 고치지 못한 채로 사내 행사에서 사회를 보고 장기자랑을 하던 팀 막내였는데, 어느새 선배 노릇을 하는 대리가 되었고 결혼을 해 아내와 며느리라는 직함도 새로 얻었다. 사소한 것까지 매번 사수를 붙잡고 묻고 확인하던 이들이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어 있었고, 또 그중에는 부모가 된 동기도 있었다. 회사 앞 홍익대에서 철없이 놀던 우리가 어느새 이렇게 어른 노릇을 하며 앉아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낯설기도 했다. 다들 크고 작은 변화들 속에서 자신들의 몫을 해내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 대견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모든 변화가 그러하듯 마냥 평탄하게 항상 다들 잘 지낸 것은 아니었다. 상사와의 갈등, 직무에 대한 고민 등으로 회사 생활이 버거울 때도 많았다. 그럴 때면 이렇게 다같이 모여 술과 음식을 놓고서 담소를 나누었다. 돌이켜보면, 내 직장 생활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바로 이것이었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는 입사 동기들끼리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것은 대단한 위로도 근본적인 해결책도 주지 못했지만 그저 그 자체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쩌면 “요즘 좀 힘들어” 하고 입으로 뱉는 그 고백의 순간에 걱정이나 근심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오 놀라운 동기의 힘이여.

때때로 어떤 이들은 같은 기수의 동료가 곧 경쟁자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인간관계야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어쩌면 회사에서 이렇게 의지하게 되는 동기(同期)는 형제나 자매처럼 돈독해져 실제로 동기(同氣)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요즘은 좀 걱정이다. 회사 선배들을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가지 이유로 동기들이 점차 퇴사를 하게 돼 결국 한두 명 남는 것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의지가 되는 입사 동기들과의 직장 생활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섣부른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가을날의 이파리처럼 동기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는 것이 직장 생활의 섭리인가 싶은 날은 괜히 울적해지기까지 한다. 간절히 바라건대, 이 동기들과 부디 오래오래 동료로 남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밥벌이의 숭고함과 고됨을 서로 나눌 수 있기를 고대한다.

곧 다가오는 창립기념일에는 처음으로 장기 근속상을 받을 예정이다. 미리 소감을 말하자면, 이 영광은 모두 입사 동기들에게 돌리고 싶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명언처럼 지금껏 함께 걸어왔듯 앞으로도 직장 생활이라는 긴 길을 함께 여행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퇴사#송별회#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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