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소명 다한 내재적 발전론, 식민사학과 쌍둥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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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연구회, 계간 ‘역사와 현실’ 100호 기념 기획발표회

《 한국사학계가 한국사학의 ‘50년 기둥뿌리’를 스스로 뒤흔들고 있다. ‘내재적 발전론’ 얘기다. ‘세계사 발전의 보편성 속에서 한국사·민족사의 발전 양상을 체계화한다’는 내재적 발전론은 1960년대 이후 식민사학 극복의 일관된 방법론이었고 사실상 근현대사뿐 아니라 전체 한국사 연구와 서술의 근간이 돼 왔다. 국내 최대 규모 한국사 연구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는 계간지 ‘역사와 현실’ 100호 기념 기획발표회 ‘한국 역사학의 위기-진단과 모색’을 19일 열었다. 최종석 동덕여대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내재적 발전론을 토대로 한 연구 성과의 한계와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한국사학계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

최종석 동덕여대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는 19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에서 열린 한국역사연구회 발표회에서 “1960, 70년대에 한국사학계는 ‘내재적 발전론’을 통해 한국사를 민족의 주체적 발전 과정으로 재구성했지만 최근에는 이론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최종석 동덕여대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는 19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에서 열린 한국역사연구회 발표회에서 “1960, 70년대에 한국사학계는 ‘내재적 발전론’을 통해 한국사를 민족의 주체적 발전 과정으로 재구성했지만 최근에는 이론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역사적 소명 다해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비판은 10여 년 전부터 종종 제기돼 왔다. 한국역사연구회가 이번 발표회를 통해 전면적인 문제 제기에 나선 것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재야학계의 낙랑군 요서설 등 상고사학, 고교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논란 등 위기에 몰린 한국사학계에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내재적 발전론은 식민사학 극복이라는 과제에서 비롯됐다. 일제의 식민사학은 반도 국가인 조선의 운명이 외부에서 결정된다는 ‘타율성론’과 조선은 고대부터 발전 없이 정체된 사회라는 ‘정체성론’으로 요약된다. 한국사학계는 1960년 4·19혁명이 촉발한 민족주의 바람 속에서 식민사학 극복을 과제로 내세웠고 조선 후기 경영형 부농이 등장해 자본주의 이행의 싹이 생겼다는 ‘조선후기농업경제사’(김용섭)를 비롯해 새로운 연구 결과가 줄을 이었다. 내재적 발전론은 이후 1980년대 민중적 민족주의와 결합하며 민중사학으로도 이어졌다.

○ 목적론 한계 넘어서야


최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의 ‘내재’와 ‘발전’이 모두 비판의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내재’는 한국사에서 외부 충격과 영향, 문화 교류를 소홀하게 취급했다. ‘발전’에 대한 비판은 더 근본적이다. 내재적 발전론이 식민사관의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반대로 뒤집어놓았을 뿐 인식의 틀은 같다는 비판이다. 일본인들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수용해 조선을 식민화하면서 적용한 목적론, 즉 근대 국민국가로의 발전이 역사의 방향이라는 인식에 여전히 갇혀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은 역사의 주체를 ‘네이션’(민족, 국가)으로 한정하고 근대적 가치를 과거 역사에 투영시킨 문제가 있다”며 “서구적 발전론을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한민족이 과거 만주와 중국 북부에 거대하고 강력한 국가를 이뤘다는 상고사 인식도 이 같은 인식과 무관치 않다고 분석한다. 그는 “민족의 발전 정도와 주체성에 집착하는 인식 틀에서는 과거에도 일류 민족이었다고 해야 열등감이 소멸된다”며 “상고사에서 일류 민족을 찾으려는 열망이 분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인 이지원 대림대 교수는 “1990년대 세계화와 지역화를 조화시키는 문제가 대두됐지만 국사학계가 (민족, 국가의 틀에 갇혀) 갈 길을 못 잡은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 지역사 등 대안 제시

내재적 발전론 ‘이후’에 대한 방향 모색은 이제 시작 단계다.

토론자로 나선 하일식 연세대 교수는 “연구자의 가치와 희망을 과도하게 투영하거나, 새로운 사료를 통해 변화를 보면 너무 쉽게 발전이라고 규정하는 데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며 “변화하지 않는 것의 이유와 구조적 배경을 질문하는 등의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우 서울대 HK연구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이 시대적 맥락에서 주목받은 것처럼 생태, 평화, 소수자 인권 등의 가치를 역사학이 수용하고 연구 성과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발표자로 참여한 신주백 연세대 교수는 ‘지역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국가 대신 지역을 중심으로 시대와 주제를 구분하고, 그 시야 속에서 동아시아 등의 역사를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대학 역사교육의 커리큘럼을 재검토하는 공동 연구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식민사학#한국역사연구회#역사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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