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그래도 내가 사과한다’에 한 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8>엘턴 존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어떻게 해야 당신이 나를 사랑할 수 있지? … 우린 서로 대화가 안 돼. 미안하다는 말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기 때문이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팝송 중 하나인 이 노래의 가사입니다.

누가 미안하다고 해야 대화가 재개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더 힘이 있고, 현명한 사람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과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잘못했지만 사과하지 않고 문제가 종결되었을 때, 굴복하지 않았음에 만족하고 우월감을 느끼게 되기도 하죠.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 심리적으로 득이 된다는 안타까운 연구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인간사의 현실이죠.

우리는 사과하는 것이 옳다고 지겹도록 배우며 자랍니다. 그러나 어릴 적 했던 사과는 대부분 억지로 토해냈던 것이죠. 그래야 어른들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어른 세계에서 미안하다고 한다고 세상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사과가 용서나 행복을 약속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죠.

발을 밟았을 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당연히 나 혼자 잘못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사과가 요구되는 대부분의 삶의 상황들은 그렇게 자명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늘 오해하고 힘겨루기를 하게 되니까요. 본능이 우선하는 존재라 할까요. 아이가 아닌 이상, 문제의 원인은 양쪽이 50 대 50, 51 대 49, 아무리 많다고 해도 3분의 1 대 3분의 2로 기여합니다.

그렇다면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콜버그의 윤리 발달 단계에 의하면, 아이들은 벌받지 않기 위해서, 보상을 얻기 위해서 옳은 일을 합니다. 즉각적인 만족을 위해서 옳은 행동을 하는 이런 단계를 인습 이전의 단계라고 합니다.

청소년들은 즉각적인 결과보다는, 규칙을 지키고 기대에 부응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합니다. 착한 사람들이 평등하게 질서를 유지하며 사는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죠. 존 레넌이 그 대표적인 청소년입니다. 이를 인습 수준의 단계라고 합니다.

어른이 되면 규칙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좀 더 나은 윤리적 원칙을 합의해 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함을 인식하고, 그 누군가가 되도록이면 나 자신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숙의 상태를 인습 이후의 수준이라고 하죠.

벌을 받을 것 같으면 생존하기 위해서 사과해야 합니다. 그러나 칭찬이나 인정을 위해서라면 하지 마세요. 그런 걸로 칭찬하거나 인정해줄 어른은 별로 없으니까요. 타인의 자존심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 대신 상대방의 사과도 기대하진 마세요.

결국 가족의 평화와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미안하다고 말할 용기를 내야 하겠죠. 양심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이죠. ‘왜 내가?’보다는 ‘그래도 내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숙한 양심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본능과 자존심의 목소리는 너무나 잘 들립니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은 정말 힘들죠.

그래도 다행입니다. 한국인들이 이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니까요. 화해와 양심에 대한 노래를 이토록 사랑하는 한국에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콜버그#윤리 발달 단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