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부끄러움을 위장하는 행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7>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1989년, 동물원 2집을 끝으로 동물원의 리드 싱어였던 광석이는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나머지 친구들은 졸업과 함께 취직을 했습니다. 저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이 되었죠. 딱 1년 재미있게 가수 놀이를 하고,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초보 의사는 늘 혼나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매일 확인하고, 잠까지 못 자서 늘 심신이 피곤한 한심한 처지입니다. 가장 힘든 신경외과에서 정신없이 뒹굴다가 한 달 만에 병원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봄이 되어 있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멀었고, 외로웠습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저를 버리고 갔던 그녀를 만나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녀는 아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을 것이었고, 저는 어색하게 어깻짓을 하며 아직도 어딘가 있을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할 것이었습니다.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는 그렇게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빨래 가방을 들고 집으로 가던 지하철 안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 노래는 사랑과의 재회를 염원하는 노래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수치심에 대한 노래입니다. 그녀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부끄러운 것이죠. 그래서 서른 즈음에도 ‘어딘가 있을 무언가를 아직도 찾고 있다’고 주절거리는 자기애적인 기만으로 도피하는 것이죠.

전통적인 정신분석에서는 부끄러움을 방어적 기능으로 인식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 보였다가 된통 당할 수 있기에 조심하게 하는 것이죠. 노출 충동이나 과잉 흥분을 차단하는 방어 수단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며 부끄러움은 하나의 독특한 감정이란 당연한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죠. 이 감정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느끼는 불쾌감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을 때, 자신이 유능하다고 여길 때 우리는 자긍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 반대의 감정이 부끄러움이죠. 당연히 못났다는 비난과 비교를 당한, 공감을 받지 못하며 성장한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달고 살아가게 됩니다.

부끄러움은 자기 이상에 못 미칠 경우에, 죄의식은 자신의 가치와 원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했을 때 느끼는 감정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크게 보면 결국 부끄러움일 뿐입니다. 다르다고 주장하며 분리되려 하는 사람들은 자기 증명에 혈안이 되어 있는 불안한 어린아이들이고, 결국 같은 것이라고 통합하는 사람들은 통달한 사람이거나 자기 증명을 해봤자 망신스럽기에 신 포도를 만드는 루저(실패자)들입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은 후자 쪽이죠.

이 노래는 ‘어떤 날’의 조동익 씨가 편곡을 해줬습니다. 반주 녹음을 하는데 무척 어린 친구가 건반을 치겠다고 왔습니다. 왜 초보자를 데리고 왔느냐고 투덜거렸는데, 알고 보니 가수 김현철이었습니다.

화음을 넣는데 여자 목소리가 필요했습니다. 마침 녹음실 사무실에 직원으로 보이는 아가씨 한 명이 앉아 있어서 합창을 같이 하자고 부탁했죠. 손사래 치는 그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설득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이 아가씨, 노래를 참 잘했습니다. 원래 가수 지망생이었다고 하더군요. 가수 장필순이었습니다. 이 노래는 만들 때부터 녹음을 할 때까지 저를 창피하게 만들었죠.

부끄러움을 처리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릅니다. 대부분 위축되지만, 무표정해지거나, 화를 내거나, 엉뚱하게 웃기도 합니다. 그 처리 방법이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될 때에는 그 원인과 부정적 결과를 찾아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김창기
#동물원#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