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우울증이나 허무주의를 앓고 있다면, 장거리 운전 중이라면 이 음반 청취가 치명적 독이 될 수 있다.
몽환적 포크를 구사하는 가수 김두수(사진)의 30주년 기념 앨범 ‘고요를 위하여’(리듬온·3월 발매 예정)는 그간 발표된 여러 앨범에서 ‘기슭으로 가는 배’ ‘나비’ ‘보헤미안’을 비롯한 11곡을 추려 새로이 녹음하고 1개의 신곡(‘고요를 위하여’)을 곁들인 음반이다.
그의 대표곡들은 6집 ‘곱사무’(2015년)에 가까운 스타일로 연주돼 통일성을 부여받았다. 김두수의 중첩된 목소리와 기타 반주가 원곡들보다 중저음 쪽으로 더 단단하게 깔린다.
김두수의 음악은 애달픈 데 그치지 않는다. 트레몰로나 빠른 아르페지오로 연주되는 기타는 시시포스의 언덕처럼 난공불락의 음 장막을 드리운다. 강풍 속 창호지같이 빠르게 떨리는 목소리가 가까스로 고개를 내민다. 방랑자의 여정이듯 고달픈 소리 풍경.
한국적 선율은 체코인들의 플루트 아코디언 첼로 연주, 페루인의 팬플루트 연주를 만나 국경을 잃는다. ‘들꽃’의 후반부를 보자. 페루 플루트의 이국적 솔로가 여울지며 리타르단도가 바람의 잦아듦처럼 당도하는데, 하모니카와 아코디언은 대금이나 생황처럼 흐느끼며 이를 맞는다.
강, 나비, 황혼, 유랑, 소멸, 저편, 무언(無言). 김두수 노랫말에 많이 등장하는 소재다. 흘러가고 날아가 버리는 이것들이 악곡과 조응한다. ‘아 언젠간 돌아가리/내 왔던 곳…그 영원의 품속으로’의 노랫말 이후 공격적인 기타 연주, 풍경(風磬), 공(gong)이 어우러지며 인상적 대단원을 이루는 ‘나는 알고 있네’는 4집 ‘자유혼’(2002년)의 한정판에만 실렸던 곡(원제목 ‘H.H에게 헌정함’)이다.
이 기념음반은 닿는 기슭이 아니라 숲의 아치가 될 것 같다. 늪처럼 질척대는 ‘김두수계(界)’로 들어가는 관문. ♥♥♥♥(10점 만점에 8.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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