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사’ 집필 주명철 명예교수 “민주주의는 ‘설득과 합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0일 13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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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을 맞아 은퇴한 대학 교수가 프랑스 혁명사를 10부작으로 쓰고 있다. 책 한 권이 대략 200자 원고지 1200장 분량이라고 치면 10부작은 원고지 1만2000장에 이른다. 최근 1부 ‘대서사의 서막’과 2부 ‘평등을 잉태한 자유의 원년’을 발간한 주명철 한국교원대 명예교수(65)를 전화로 만나봤다.

“프랑스 혁명 당시 민중들이 흘린 피가 역사의 추진력으로 작동했지만 새로운 체제는 폭력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민주주의는 결국 ‘설득과 합의’겠지요.”

주 교수는 “프랑스 혁명은 헌정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입법가들이 의회 내에서 서로를 설득하는 의회활동을 중심으로 혁명사를 짚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 무기는 사료다. ‘1787년부터 1860년까지 의회기록’ ‘프랑스 혁명기 의회의 역사’를 비롯한 수많은 프랑스어 사료에 근거를 뒀다.

앙시앵레짐(구체제)에 대한 오해도 고치고 싶다고 했다. 흔히 앙시앵레짐(구체제)을 혁명이 극복해낸 모순 덩어리로만 보지만 절대 왕정이 후원하는 여러 아카데미에서 활발하게 학술 토론이 벌어지는 등 근대화에 긍정적인 역할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앙시앵레짐이 사실은 혁명을 품어 낳은 면이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혁명 도중인 1790년 제정된 법 중에 ‘성직자 민사 기본법’(Civil Constitution of Clergy)이라고 번역된 것이 있다. 마치 성직자의 민사 소송 절차를 정한 법 같지만 사실은 구체제에서 제1신분이었던 성직자를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포함시키고 재산과 직위 임명 등을 통제하는 법이라고 한다.

“원래 ‘성직자 시민 헌법’이 맞는 표현입니다. 일본 학자들이 잘못 번역한 것을 그대로 옮겨 쓴 거죠. 또 ‘공안위원회’는 나라를 구한다는 의미의 ‘구국위원회’가 맞아요.”

주 교수는 “혁명 기구와 법률 등에 뜻이 모호한 번역이나 오역이 꽤 있는데 이번 기회에 고치려고 한다”고 말했다.

주 교수에게 프랑스 혁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물었더니 “마음이 약해서 (피 흘리는 혁명 과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혁명은 고통스럽고, 말조심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어서 행복한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민주주의를 향한 몸부림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1792년 8월 10일 민중들이 국왕이 있는 튈르리 궁으로 진격해 입헌군주정을 사실상 끝낸 ‘제2의 혁명’ 순간이라고 봅니다.”

주 교수는 프랑스 혁명이 주는 교훈에 대해 “민주주의는 매우 어렵게 도달한 것이고, 그만큼 소중한 가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수년 전 원로 서양사학자인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의 권유로 책 집필을 시작했지만 미뤄두다가 올해 정년을 맞았다고 한다. 탈고한 3, 4권은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고 현재 5권 째의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 매년 1권 씩 쓸 생각이라고 하니 10부작을 모두 끝내려면 6년은 더 걸릴 예정이다.

“마라톤처럼 느껴지지만 어쨌든 골인 지점은 조금씩 다가오지 않겠습니까. 이걸 끝내야 마음이 편해질 거 같아요.”

조종엽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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