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 소설]<45> 크리스마스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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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소설가
이기호 소설가
모태 솔로 남자들에게 호환마마보다 더 두려운 크리스마스 연휴가 다가오고 있으니, 작년 이맘때 개별 사례들을 통해서 본, 가지 말아야 할 곳, 하지 말아야 할 일,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여기에 따로 정리해두고자 한다.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잘 새겨듣고 같은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첫째, 대형 마트나 백화점 방문을 자제하라.

혼자라도 괜스레 크리스마스 기분 낸답시고 와인이니 케이크니 사려고 대형 마트나 백화점 같은 곳을 방문하지 마라. 그건 마치 죽은 아내를 찾아 지옥까지 내려간 오르페우스와 같은 처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노니, 오르페우스는 구해야 할 아내라도 있었지, 무슨 초코 케이크를 그리 열렬히 사랑해 그것을 구하려 거기까지 찾아간단 말인가. 실제로 작년 이맘때, 모태 솔로 44년 차 박모 씨는 대형 마트에서 나눠준 와인1+1 ‘찌라시’에 현혹돼 그곳을 찾았다가, 자신보다도 어린 아빠들이 ‘파워레인저’ 장난감을 카트에 싣기 위해 난리 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박 씨는 그들에게 떠밀려(그들은 박 씨 또한 자신들과 똑같은 ‘경쟁자’ 아빠로 착각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그대로 자빠져 5번, 6번 척추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기도 했는데, 후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다른 아빠들처럼 ‘파워레인저’ 장난감을 사고 말았다고, 자신이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한 바 있다(이 말은 또 얼마나 애잔하게 들린단 말인가). 그러니 절대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대형 마트, 백화점 방문을 삼가,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살 것 있으면 동네 편의점을 가라. 거기에 가면 ‘마주앙’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엔, 우리와 같은 처지의 모태 솔로들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다….

둘째, 길거리에서 갑자기, 우연을 빙자해, 다가오는 여자들을 조심해라.

십중팔구 종교 전도의 일환이다. 왜? 무엇 때문에? 멀쩡한 여자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단 말인가. 여자들이 갑자기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지 않는 한, 세상의 이치보다 더 뛰어난 ‘정신승리’를 갈구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결단코 벌어지지 않는다. 그건 마치 ‘IS’가 단체로 기독교로 개종하는 일과도 같은 일이다. 실제로 작년 이맘때쯤 모태 솔로 25년 차이자, 군 제대 5개월 차, 거기에 편의점 야간 알바 3개월 차인(그러니까 모태 솔로 ‘트리플 크라운’) 김모 씨는, 신촌 일대를 혼자 걸어가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미모의 여대생이 ‘저기, 그쪽하고 좀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커피라도 한 잔 할 수 있을까요?’라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 한 번도 뵌 적 없는 14대 할아버지의 제사를 드리고(그러니까 제사 비용 20만 원을 뜯기고) 겨우 풀려난 적이 있었다. 평상시, 제정신으로는 결코 하지 않을 일들, 넘어가지 않을 일들이, 크리스마스 전후에 집중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러니, 길거리에서 여자가 말을 걸어오면…. 아니, 차라리 길거리에 혼자 다니지 마라. 뭐한다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길거리에 혼자 걸어 다닌단 말인가. 길거리도 풍경 망친다고 우리를 멀리하는 것이 바로 이맘때,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셋째, 쓸데없이 SNS나 TV 채널을 기웃거리지 마라.

SNS에 가봤자, 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어디를 가고 있는 중이다, 무얼 먹고 있는 중이다, 무슨 선물을 받았다, 하는 얘기들뿐이다. 거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좋아요’ 클릭해주는 거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직 조회수 담당일 뿐이다. 그걸 잊어선 안 될 것이다. 한낱 아라비아숫자로 존재하는 친구들…. TV도 보지 마라. 옛날처럼 ‘나 홀로 집에’ 시리즈 해주지도 않는다. 죄다 로맨스나 액션물만 해준다. 그런 거 보고 나서 집안 전등 다 끄고 침대에 홀로 누우면 허한 마음 괜스레 더 쓸쓸해지기만 한다. 그냥 평상시처럼 고요하게 지내는 게 낫다.

그러면 우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묻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무슨 얘기를 들었나? 앞에 다 말하지 않았는가. 마트나 백화점 가지 말고, 편의점 이용할 것, 길거리에 혼자 걸어 다니지 말 것, 누군가 말 걸면 그냥 못 들은 척 지나칠 것, SNS나 TV도 보지 말 것. 그리고 그 대신 고요하게 명상에 잠길 것. 그것이 우리가 이 성난 시즌을 무사히 지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것이 우리를 상처로부터 보호해줄 것이다.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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