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시작 전 반드시 듣게 되는 ‘그녀 목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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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는 멘트로 관객을 들었다 놨다… 주요 극장의 안내 멘트 주인공은

‘공연 중 휴대전화는 꺼주세요, 공연 사진 촬영은 커튼콜 때만 가능합니다.’

극장 측이 연극, 뮤지컬 공연 시작 전 관객들에게 전하는 안내멘트 중 일부다. 주로 매너와 안전에 관한 안내지만 어떤 목소리와 분위기로 전하느냐에 따라 관객이 받아들이는 온도차는 달라진다.

극장 측은 기분 좋은 안내멘트를 전하기 위해 누구에게 맡길지 늘 고심한다. 전직 아나운서, 전문 성우, 하우스매니저 등 서울 시내 주요 극장에서 안내멘트를 하는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만나봤다.

“신사분, 숙녀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정쩡한 정체성을 고민 중이신 여러분 모두 휴대전화와 카메라의 전원을 끄시고 라카지 쇼에 흠뻑 빠지신다면, 1막 공연이 끝나기 전에 여러분 자신도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성적 취향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무대 위의 섹시한 언니 오빠인지 긴가민가 싶더라도 옆 사람과 과도한 만담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23일 LG아트센터에서 성소수자 부부의 유쾌한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라카지’ 공연을 1분가량 앞두고 나온 멘트에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멘트의 주인공은 이선옥 하우스매니저(46). 극장 입구 통로 한쪽에서 마이크를 잡은 그는 매일 생방송으로 멘트를 전한다.

톡톡 튀는 멘트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 걸까. 이 매니저는 “로비에서 관객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거나 공연 리허설을 지켜보며 패러디할 부분들을 찾아낸다”라고 말했다.

“예전에 공연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경우 1막 끝 무렵 줄리안 마쉬가 나와 ‘여배우가 사고를 당해 공연을 할 수 없다. 입장권은 매표소에서 환불해 주겠다’는 대사를 해요. 인터미션 때 로비에서 중년 여성분들이 실제 환불 여부를 놓고 토론을 벌이더라고요. 다음날 공연부터 1막이 끝나면 ‘실제 상황이 아니다’라고 방송했더니 관객들이 막 웃더라고요. 하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자유소극장, 콘서트홀의 안내멘트는 전직 아나운서 출신인 홍보부 정다미 대리(39)가 맡고 있다. 2003∼2005년 목포MBC 아나운서로 활동한 그는 2006년부터 매년 안내멘트를 녹음하고 있다. 그는 “뉴스 프로그램처럼 높은 톤의 목소리와 장단고저를 지켜 녹음한다”며 “예술의전당 안내멘트의 콘셉트인 ‘우아함’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웃었다.

국립극장도 내부 직원에게 녹음을 맡겼다. 극장의 한국어와 영어 안내멘트 주인공은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영국에서 생활한 공연기획팀 김영숙 주무관(27). 그는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던 다른 직원과 함께 안내멘트를 녹음한 뒤 극장장을 비롯한 내부 직원들의 투표를 거쳐 결정됐다”며 “극장에서 안내멘트를 접할 때마다 민망하면서도 뿌듯하다”고 말했다.

명동예술극장과 충무아트홀의 안내멘트는 전문 성우가 맡았다. 명동예술극장의 안내멘트를 녹음한 성우 이명희 씨(34)는 유명 자동차, 아파트 등 다수의 광고에서 내레이션을 해 목소리가 친숙하다. 이 씨는 “동국대 연극영화과 출신인데 배우나 연출가 대신 성우의 길을 걷고 있다”며 “극장에 제 목소리가 늘 존재한다는 점이 즐겁다”고 말했다.

종종 출연 배우가 안내멘트를 전할 때도 있다. 일종의 팬 서비스 차원이다. 뮤지컬 ‘킹키부츠’는 돈 역의 배우가 공연 시작 전 무대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연기를 하며 “이제 전화 안 되고, 문자 안 돼. 사진 안 돼. 졸아도 안 돼. 먹는 건 제일 안 돼. 진동 소리도 짜증나니까 안 돼”라고 말한다. 2013년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경우 주인공 베르테르 역의 엄기준과 임태경이 직접 안내멘트를 녹음한 뒤 배우별 캐스팅 날에 맞춰 각각 방송했다. 2012년 뮤지컬 ‘닥터 지바고’도 주인공 지바고 역의 배우 홍광호가 안내멘트를 녹음해 방송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극장#안내 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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