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문화계 되감아 보기]<2>가요계 결정적 노래와 순간
소유-정기고의 ‘썸’, 자이언티 ‘양화대교’… 멜로디와 가사로 확실한 ‘한방’
완전체로 컴백 원조 아이돌 god… 한 뮤지션 아닌 한 세대의 귀환
5년 만에 돌아온 가수 서태지(왼쪽 사진)는 10월 기자회견에서 신작에 대해 “(8월 태어난) 딸아이도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됐으면 했다”고 밝혔다. 신해철이 10월 사망한 뒤 가요 팬들 사이에 거대한 추모 물결이 일었다. 고인의 의지를 담은 애절한 발라드 ‘민물장어의 꿈’도 뒤늦게 조명을 받았다. 동아일보DB
《 많은 가수가 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어떤 가수는 가면 다신 못 올 곳으로 돌아갔다. 올해 가요계에는 큰 일, 큰 어려움이 많았다.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공연과 음반 시장 모두 꽁꽁 얼어붙었다. 10월 신해철의 사망으로 가요계는 다시 침울한 분위기에 빠졌다. 김추자부터 god, 서태지, MC몽, 양희은, 한영애, 토이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가수가 오랜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전문가들과 올해의 멜로디, 올해의 가사, 올해의 귀환, 올해의 순간을 돌아봤다. 》
○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도부터 시까지, 계이름은 12개이지만 올해도 1200개, 12만 개, 아니 그보다 많은 멜로디가 작곡가들의 머리에서 나와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올해를 대표할 만한 결정적인 선율은 뭐였을까.
씨스타의 소유와 정기고가 함께 부른 ‘썸’과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는 멜로디와 가사 양면에서 올해 한 방을 날렸다고 여러 전문가들이 입을 모았다.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의 남중권 PD는 ‘썸’에 대해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은 공감의 최대치를 끌어내면서 ‘썸’이란 국적불명의 신조어를 확실히 풀이해낸 절묘한 가사”라고 했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대중성과 세련됨 사이의 줄타기를 잘했다. 단순한 편곡임에도 이만한 히트를 기록한 건 멜로디의 힘”이라고 말했다.
‘우리 집에는 매일 나 홀로 있었지/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로 시작하는 ‘양화대교’는 성장한 화자가 다시 서울 양화대교를 건너면서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는 노래다. 강일권 웹진 ‘리드머’ 편집장은 양화대교의 가사와 멜로디를 칭찬하며 “곡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면서도 반복을 통해 귀를 잡아끄는 구성이 일품이었다. 특히 후렴구보다 버스(verse·절)가 뛰어나다”고 했다.
올해 크게 히트한 ‘썸’을 부른 정기고(왼쪽)와 소유. 동아일보DB이대화 평론가는 태양의 ‘눈, 코, 입’을, 서정민갑 평론가는 여성그룹 EXID의 ‘위아래’를 올해의 멜로디로 꼽았다. 그는 ‘위아래’에 대해 “안무 영상으로 주목을 끌었지만 잘 만든 멜로디 한 방이 없었으면 뜨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김윤하 평론가는 혼성 포크 듀오 ‘김사월X김해원’의 ‘비밀’을 “올해 가장 섹시했던 노랫말”로 추천했다.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을 말할게… 이해한다면 그건 유령이 되는 거야… 나를 아껴줘/아니 그냥, 내버려둬…’를 남녀가 주고받는 이 노래에 대해 그는 “온몸을 배배꼬거나 ‘아임쏘핫’ 하지 않아도 은밀하고 관능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했다.
○ 서태지의 귀환, 마왕의 죽음
전문가들은 ‘소격동’ ‘크리스말로윈’을 앞세운 서태지가 ‘올해의 귀환’이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전략을 세워 다시 이슈를 만들면서 돌아왔고, 가요계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자신의 기본기를 충실히 보여줬다”면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만 한 파장이나 음악적 완성도는 아니었지만,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별 세 개 반짜리 앨범을 내주는 뮤지션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윤하 평론가는 “한 뮤지션이 아니라 한 세대의 귀환이었다”며 god의 컴백에 주목했다. 강일권 편집장은 “1990년대를 풍미한 이들이 대거 돌아왔지만 기대만큼 압도적인 인상을 남긴 이는 없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이 공히 꼽은 ‘올해의 순간’은 10월 27일 오후 8시 19분이었다. 신해철이 사망한 시간. 서정민갑 평론가는 “1990년대가 갑자기 사라진 느낌을 받았다. 몇 곡만으로 평가하긴 힘들지만 신해철은 오랜만에 좋은 노래들을 내놓으며 돌아왔다. 제2의 전성기로 연결될 수도 있던 그의 귀환이 미완으로 끝나버린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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