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둘러싼 8일의 이야기 싣고… 유령처럼 찾아온 난파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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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에 2집 낸 록밴드 ‘할로우 잰’

6인조 록 밴드 할로우 잰. ‘할로우 재뉴어리(공허한 1월)’의 약자. 왼쪽부터 서한필(기타), 정동진(베이스기타), 류명훈(드럼), 임환택(보컬), 김성출(F/X), 이광재(기타). 도프엔터테인먼트 제공
6인조 록 밴드 할로우 잰. ‘할로우 재뉴어리(공허한 1월)’의 약자. 왼쪽부터 서한필(기타), 정동진(베이스기타), 류명훈(드럼), 임환택(보컬), 김성출(F/X), 이광재(기타). 도프엔터테인먼트 제공
격랑에 내던져진, 난파 직전의 선박이 있다. 대양을 뒤엎는 신의 분노 속에 등불은 흔들리고 시야는 좁아진다. 희망은 빠르게 마모된다. 선원 잃은 배의 이물에서 오직 선장만이 보이지 않는 정박지를 고집스레 가리키며 섰다. 악에 받쳐 그는 전진 명령을 반복한다.

6인조 록 밴드 ‘할로우 잰’의 음악은 멸망 직전의 격동 같다. 왼쪽과 오른쪽 채널에서 겹치고 어긋나며 맞물려 분사되는 전기기타 두 대의 아름답고 비극적인 분산화음, 보컬 임환택의 단속적인 절규, 트레몰로(음이나 화음을 빠른 속도로 떨리는 듯 되풀이하는 연주법)와 크레센도로 끓는점을 향해 치닫는 악곡. 할로우 잰은 데뷔 앨범 ‘러프 드래프트 인 프로그레스’(2006년)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고, 2008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록 음반’ 부문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들은 음악처럼 난파했다. 직장인으로 구성돼 연습시간조차 넉넉지 않았던 멤버들끼리 성격과 음악적 견해차가 벌어져 2009년 잠정 해체한 거다.

지난달 할로우 잰 2집(‘데이 오프’)이 나왔다. 8년 만이다. ‘데이 0’부터 ‘데이 7’까지 8개의 곡에 죽음의 날을 둘러싼 이야기를 풀어냈다. 평단의 호평에도 밴드는 또 한 번 죽음 같은 위기를 맞았다. 1월 말 기타리스트이자 주 작곡자인 이광재에게 공황 증세가 생긴 것이다. 대리 멤버를 투입한 지난달 미국 공연을 빼면, 국내에서 신작을 연주할 무대도 갖지 못했다. 호전 중인 이광재와 서한필(기타), 임환택을 14일 서울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2011년 겨울 다툰 뒤 혼자 음악 해보겠다며 곡 쓰는데 또 할로우 잰 (스타일의) 노래가 만들어진 거예요. 오랜만에 환택이에게 전화해서 ‘네가 불러야만 하는 노래가 나왔는데 해볼래?’ 했죠.”(이광재) “그건 꼭 부르고 싶은 노래였어요. 그때 할머니가 암 투병 중이었는데, 산 자가 죽은 자에게 하려는 말을 가사에 담고 싶었죠.”(임환택)

그렇게 ‘데이 2’가 먼저 만들어졌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하는 말을 담은 ‘데이 3: 더 데이 애프터’가 나오면서 앨범 개념이 그려졌다. 임환택은 “음반 제목 ‘데이 오프’는 휴일을 뜻한다. 죽음도 쉼이라고 봤다”고 했다.

임환택은 가사를 쓰며 한국 전통 장례식을 떠올렸고, 순우리말로 그 느낌을 살리기로 했다. ‘홀로 노래할 도린곁(사람이 별로 가지 않는 외진 곳) 찾아서 멀리…’(‘데이 1’) ‘하얗게 회멸되고 땅보탬(사람이 죽어서 땅에 묻힘) 되기를 기다리며… 새벽을 헤치고 만난 햇귀(해가 처음 솟을 때의 빛)’(‘데이 2’) 같은 노랫말이 나왔다. 음악적 색조는 더 어두워졌다. 새로 영입한 F/X(전자 음향 효과) 전담 멤버 김성출은 도로와 공사장, 지하철역의 소음과 새소리를 채록한 뒤 컴퓨터로 변형한 음향을 밴드 연주에 겹쳐 낸다. ‘데이 1’에는 스웨덴어 내레이션도 넣었다. 말보다 소리에 더 가깝게 들리는 언어여서 택했다고.

1년 반의 녹음 과정은 음악 분위기만큼 고통스러웠다. 이광재는 “공황 증세를 통해 죽음에 대한 엄청난 위압감과 절망을 체험했고, 무대에 설 자신감을 잃었다”고 했다.

다시 난파할 것인가. “다시는 이런(죽음을 다룬) 앨범 안 할 거예요. 3집엔 행복이나 희망(을 담은 음악) 하자고 약속했어요. 다음 숙제는 이거네요. ‘희망의 정서를 어떻게 처절한 사운드 안에 담아낼 것인가.’”(이광재, 임환택)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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