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이 저자]‘남자의 취미’ 쓴 남우선 대구MBC 편성부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인간구원은 종교보다 취미가 낫다”고 믿는 남자

몇 년 전 겨울, 선배는 말했다. “취미를 꼭 하나 즐겨라. 그게 없으면 힘든 인생 버티기 힘들다.” 소주를 삼키는 모습이 탈진한 듯했다. “내가 취미가 없으니까 만날 술만 마신다.” 취미 없는 남자, 보통 한국 남자의 모습이다.

‘남자의 취미’(페퍼민트) 저자인 남우선 대구MBC 편성제작부장(47)에게 인터뷰를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가 전화를 받은 곳은 독도였다. 독도를 영상에 담기 위해, 그리고 돌아가 다시 열심히 취미를 즐기기 위해 일하는 중이란다.

“취미가 없으면 시간이 그냥 흘러갑니다. 술만 마시는 한국 남자는 항상 재미를 갈구하면서도 고달프고 재미가 없다며 푸념하죠. 취미가 있고 없고는 펄떡거리는 물고기와 축 처진 물고기 차이와 같습니다.”

남 씨의 인생은 취미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사진동아리에서 배운 사진 실력은 수준급이다. 책에도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담았다. 30년째 클래식 음반과 오디오를 수집하고 있고 관련 평론을 쓰고 직접 선곡해 녹음지휘한 음반도 냈다. 스쿠버다이빙은 10년째, 복싱 캠핑 산악자전거도 즐긴다.

“취미를 위한 시간을 빼고 나머지 시간에 일합니다. 잠을 줄여서라도 즐겨요. PD란 바쁜 직업이지만 시간을 쪼개면 취미에 쓸 시간은 있어요. 취미를 즐기면 사랑하는 애인을 만날 때의 떨림이 느껴져 몸에서 엔도르핀이 돕니다. 취미에 빠진 남자들의 눈빛이 살아 있고 피부가 탱탱한 이유가 있어요.”

책은 취미 없는 남성을 위한 ‘취미 안내서’이자 취미에 빠진 남성의 속내를 담은 일기장이다. 책에는 문화평론가 김갑수(오디오), 배우 최민수(할리데이비슨) 등 남자 9명의 9가지 취미가 등장한다. 많게는 세 번을 만났고, 한 번밖에 여건이 안 될 때는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 보냈다. 서면·전화 인터뷰로 내용을 촘촘히 보강했다. 남 씨는 “취미에 미친 환자는 같은 부류를 금방 알아보고 공통점이 많아서 이야기가 술술 풀린다. 내가 직접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취미가 없는 사람에게 안내서가 되도록 쉽게 썼다”고 했다.

최민수를 만난 일화가 재밌다. 지인의 소개로 어렵게 최 씨를 만났지만 그는 냉랭했다. 어색함을 취미 이야기로 녹였다. 남 씨는 “스쿠버다이빙, 자동차 일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둘 다 고독과 자유를 즐긴다는 공통점을 찾았다. 그러고 나서 그가 바로 ‘어이, 브러더’라며 나를 끌어안았다”고 말했다. 최 씨의 통과 의례를 마친 덕분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그의 작업공간과 벗은 등짝, 작업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책 속에는 오디오, 할리데이비슨, 구두, 수염, 스쿠버다이빙, 캠핑, 요트, 패러글라이딩, 프리다이빙까지 9개의 취미가 나온다. 언뜻 보기엔 진입장벽이 높은 듯하다. 남 씨는 “취미를 즐기는 데 필요한 비용을 골프 기준으로 정했다. 비싸다고 알려진 요트도 비용을 따져 보면 더 싸다. 주저하지만 말고, 앞뒤 가리지 말고 즐겨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인간 구원은 종교보다 취미가 낫다고 믿고 있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남우선#남자의 취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