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17cm초소형 인류 만들어 종말에 대비… 베르베르 신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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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인류 1·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이세욱 옮김/445, 333쪽·각 1만3800원/열린책들

소설 ‘개미’와 ‘신’의 작가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판타지 과학소설의 1부다. 소설의 배경은 근미래의 지구, 자원 고갈과 전염병 창궐, 핵전쟁 위기로 암울한 상황에서 과학자들은 신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한 비밀 연구에 한창이다. 이들이 창조한 인류는 17cm 크기인 초소형 인간 ‘에마슈’. 방사능이나 전염병 등에 내성을 갖춘 데다 문명의 때를 타지 않은 순수한 심성을 갖춰 인류의 마지막 희망으로 떠오른다.

신작은 작가에게 커다란 명성을 안겨 준 ‘개미’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많다. 한 뼘 크기의 미니 인간 에마슈와 창조주가 된 현생 인류의 관계는 전작 ‘개미’에서 작은 곤충과 거대한 인간 관계의 응용판이라 할 만하다. 에마슈 연구를 주도하는 과학자 다비드 웰즈가 ‘개미’의 중심인물 에드몽 웰즈의 증손자라는 설정도 그렇다.

이 책의 진짜 재미는 현생 인류가 실은 키가 17m나 되는 거인족이 창조한 제2의 인류라는 설정에서 비롯한다. 현생 인류가 제1인류였던 거인의 키를 10분의 1(평균 170cm)로 줄인 제2인류이고, 소형화의 방식으로 계속되는 제3인류(에마슈)의 창조가 실은 어머니 지구 ‘가이아’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기획한 거대 프로젝트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독자들은 에마슈의 모습에서 현생 인류의 시원(始原)과 종말의 기운을 동시에 보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실 인류가 자기 파괴적 성향을 극복하기 위해 신종 인류로의 진화를 꾀한다는 설정은 그리 낯설지 않다. 유전자 조작을 통한 완벽한 인간 창조 실험은 마거릿 애투드의 ‘인간 종말 리포트’를 떠올리게 하고, 남극에서 거인족이 발견되는 설정이나 인류 보완 계획은 아서 클라크의 SF소설 ‘유년기의 끝’에서 영향을 받은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런 익숙한 요소들에 신종 플루나 후쿠시마 원전사태, 중동위기 같은 현대 사회의 위기 징후들을 버무려 인류문명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소설로 빚어내는 작가의 내공은 녹슬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번역작업이 한창이라는 2부에서도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긴장감과 몰입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베르나르 베르베르#제3인류#종말#에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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