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맥주 리추얼, 황홀한 맛과 향 살리는 ‘오묘한 의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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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마스터 알렌 셰코가 시연한 ‘9단계 리추얼’

벨기에 맥주 ‘스텔라 아르투아’의 드래프트 마스터(생맥주 따르기 전문가) 알렌 셰코 씨가 9단계에 걸쳐 맥주를 따르는 ‘맥주 리추얼(의식)’을 선보인 뒤 활짝 웃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벨기에 맥주 ‘스텔라 아르투아’의 드래프트 마스터(생맥주 따르기 전문가) 알렌 셰코 씨가 9단계에 걸쳐 맥주를 따르는 ‘맥주 리추얼(의식)’을 선보인 뒤 활짝 웃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맥주는 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증거다.”

미국의 정치사상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맥주에 바친 헌사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시든, 홀로 영화를 보며 마시든 훌륭한 맥주를 맛본다는 것은 진정으로 신의 축복이다.

최근 수입 맥주가 각광을 받으며 맥주를 성스럽게 마시는 이른바 ‘맥주 리추얼(Ritual·의식)’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차를 마실 때 다도(茶道)가 있듯이 맥주를 마실 때에도 나름의 ‘예’를 갖추는 것이다. 벨기에 맥주인 스텔라 아르투아의 드래프트 마스터(생맥주를 잘 따르는 전문가)인 알렌 셰코 씨를 최근 만나 맥주 리추얼에 대해 들어봤다.

벨기에 출신인 셰코 씨는 지난해 드래프트 마스터로 선정된 뒤 세계를 돌면서 각국의 바텐더 등에게 맥주를 잘 따라 마시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같은 맥주여도 어떻게 따르는지에 따라 맥주 맛이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스텔라를 제대로 마시려면 성배라는 뜻의 ‘챌리스(chalice)’라는 잔에 맥주를 9단계로 따라야 해요. 이른바 ‘9단계의 의식’이지요.”

그는 “1366년 벨기에 루뱅의 양조장에서 탄생한 스텔라 아르투아는 600여 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따라 맥주 의식도 거창하다고 소개했다. 그러곤 “잔을 찬물로 깨끗이 씻는 게 맥주 리추얼의 출발점”이라며 잔을 닦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잔에 묻은 작은 먼지나 립스틱 자국도 맥주 거품에 영향을 줍니다. 거품은 맥주의 탄산 성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외부에서 산소가 유입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지요. 거품이 균일하지 않으면 맥주의 향이나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잔을 씻은 뒤 그는 맥주통에서 맥주를 따랐다. 하지만 처음 나오는 맥주는 적당히 버리고 그 다음 나오는 맥주부터 잔에 담았다.

“버리는 맥주를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나오는 맥주는 공기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최고로 신선한 맥주를 맛보기 위해서는 버려야 합니다.”

셰코 씨는 잔을 45도 정도 기울여 따랐다.

“거품을 밀어 올린다는 느낌으로 적절한 속도로 따르는 것 역시 중요해요. 난폭하게 따르면 거품의 입자가 커지고 쓴맛이 나죠. 탄산도 과도하게 생성돼 조금만 마셔도 속이 더부룩하고, 다음 날까지 숙취 현상이 남을 수 있어요.”

그는 맥주를 살짝 넘치게 따른 뒤 스키머(맥주 거품을 걷어내는 도구)로 넘치는 거품을 조심스레 정리했다.

“맥주를 따르면 쓴맛을 내는 거품이 위로 올라옵니다. 이 거품은 소화가 잘되지 않고 쓴맛이 나기 때문에 걷어내야 하지요. 거품을 제대로 걷어내야 쓴맛이 약하고 부드러운 맛이 나는 맥주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적절하게 거품을 걷어내자 맥주잔 위로 볼록하게 새로 거품이 올라왔다. 그는 이 거품을 왕관(crown)이라고 칭했다.

“왕관 모양이 어떻게 나오는지가 맥주를 얼마나 잘 따랐는지의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맥주를 잘 따랐다면 맥주를 마셔서 거품이 부서지더라도 거품 위의 동그란 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셰코 씨는 거품이 손가락 두 개 정도의 높이(약 3cm)로 형성됐는지 확인했다. 그러고 흐르는 물에 잔 밑 부분을 살짝 담가 잔에 묻은 맥주 거품을 없앰으로써 ‘성배에 든 스텔라’를 완성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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