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돈키호테’ 개막을 앞두고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김지영(왼쪽)과 이동훈. 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이 붉은색 티어드 스커트(층이 진 치마) 자락을 흔들며 등장했다. 반짝이는 두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하고, 입가에는 살짝 짓궂은 미소가 감돈다. 그는 발레 ‘돈키호테’의 말괄량이 새침데기 소녀 키트리다.
키트리는 시골총각 바질(이동훈)을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 괜히 다른 남자에게 눈길을 보내고 춤을 추면서 ‘밀당’을 하는 중이다. 김지영 이동훈 커플이 연습을 하는 동안, 한편에서 박슬기 김윤식 커플도 같은 동작을 하며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내 국립예술단체연습동 연습실. 이달 초부터 시작된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 연습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하루에 두 차례씩 전막 리허설을 하고 있다. 연습실 구석에는 자기 발에 맞게 토슈즈를 바느질하는 발레리나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발레 ‘돈키호테’의 주인공은 돈키호테가 아니다.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1547∼1616)의 동명 원작 중 ‘카마초의 결혼’ 에피소드를 토대로 키트리와 바질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키트리는 사랑하는 바질 대신 부자 카마초와 결혼할 위기에 처하지만 바질의 자살 소동 끝에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3막 결혼식 장면에서 김지영이 32회 연속회전(푸에테)을 하는 동안 연습실에는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깔끔하게 푸에테를 마치자 박수가 쏟아졌다. 무용수들은 음악이 나오고 춤에 몰입하면 매끈한 표정과 몸짓을 보이지만, 음악이 멈추자마자 숨을 몰아쉬고 다리를 절면서 걷기 일쑤다. 냉방장치가 가동되는 연습실에서도 땀범벅이다.
28∼3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펼쳐지는 ‘돈키호테’에는 김지영-이동훈, 박슬기-김윤식, 이은원-김기완이 짝을 이뤄 번갈아 주역으로 나선다. 클래식 발레에서 발레리나의 손등이 주로 몸 바깥으로 향하는 데 비해 돈키호테에서는 손등이 몸 안 쪽으로 향하는가 하면, 스페인의 플라멩코를 연상시키는 군무로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단순 명쾌한 줄거리, 기교 넘치는 안무로 발레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김지영은 중학생 때 큐피트 역할로 돈키호테에 참여했다. 현재 국립발레단 단장인 최태지가 당시 키트리를 맡았다. 김지영은 “이번 돈키호테는 하이라이트 중심으로 엮고, 결혼식 장면에서 화려한 디베르티스망(줄거리와 상관없이 펼쳐지는 춤의 향연)을 추가해 더 재밌게 꾸몄다”고 설명했다. 이동훈은 “돈키호테는 무용수들에게 인기가 높은 작품인데 나는 국립발레단 입단 5년 만에 처음 참여해본다”면서 “바질의 유쾌한 캐릭터를 잘 살리는 게 관건인 것 같다”고 말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세르반테스의 원작에 가깝게 설정했으며, 현대 관객의 취향을 고려해 느리고 여유로운 안무 대신 빠른 스텝을 추가했다. 문병남 국립발레단 부예술감독이 재안무 했다. 유형종 음악·무용 칼럼니스트가 해설을 맡는다. 최태지 단장은 “클래식 작품의 원작을 살리는 것도 좋지만 현대에 걸맞게 재단장하는 작업도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돈키호테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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