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이후 1년 만에 열린 KBS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 서서히 예열이 되고 나자 앙상블의 응집력을 보여주었다. KBS교향악단 제공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는 2012년 2월 이후 1년 만의 정기 연주회이자 작년 9월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이후 첫 무대였다. 전용우 악장이 튜닝에 공을 들일 때 긴장감이 흘렀다. 피아니스트 얀 시몬(47)과 지휘자 레오스 스바로프스키(52), 두 체코인이 갈채 속에 등장했다. 1991∼1995년 체코 브르노 필의 수석지휘자였지만 현재 둥지가 없는 스바로프스키는 알렉산데르 라바리, 케이스 바컬스, 야체크 카습시크와 더불어 법인화한 KBS교향악단의 첫 상임지휘자 후보로 꼽힌다.
첫 곡인 드보르자크 피아노 협주곡 도입부에서 관현악 총주의 앙상블은 헐거웠다. 몸이 덜 풀린 듯했다. 스바로프스키의 시선이 피아니스트와 단원 사이를 부지런히 오갔다. 총주가 크고 단단해지면서 점차 사운드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2악장의 서정적인 악구에서 종소리처럼 울리는 피아노음은 탐미적이었다. 3악장에서는 리드미컬하면서 부드럽게 이어진 양손의 기교가 돋보였으며 앙상블의 응집력도 증가했다. 스바로프스키는 호른과 목관악기 주자들을 일으켜 세웠다. 피아노가 관현악의 일부에 가까운 드보르자크 협주곡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시몬은 쇼팽 녹턴 Op.48-1과 스케르초 1번 Op.20을 앙코르로 연주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2부에는 스메타나 ‘나의 조국’ 중 네 곡이 연주됐다. 두 대의 하프 연주로 시작된 ‘비셰흐라트’의 도입부는 앙상블이 산만했다. 현악이 가세하고 나서 안정감을 찾은 음악은 거대한 스케일로 부풀어 올랐다. 큰 동작에 힘과 절도가 돋보인 스바로프스키의 볼 살이 떨렸다. 곡은 점차 단단한 응집력을 갖추어갔고 막판의 셈여림 조절도 효과적이었다.
‘몰다우’가 뒤를 이었다. 여러 갈래 물결이 소용돌이치는 부분에서 앙상블이 다소 거칠었지만 중반 이후 시릴 정도로 맑게 표현된 현악 연주는 마치 바그너의 ‘파르지팔’ 전주곡을 연상케 했다. 스바로프스키는 청중을 점입가경으로 이끌었다. 큰북이 우르릉대고 심벌의 타격음이 가슴에 꽂혔다. ‘샤르카’에 이르러서는 악단의 몸이 완전히 풀린 듯 격정적인 연주를 쏟아냈다. 끝 곡인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를 지휘할 때쯤 스바로프스키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단원들의 표정에도 미소가 번져나갔다. 하프와 목관, 호른, 타악기 주자를 기립시킨 스바로프스키는 앙코르로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춤곡 8번을 지휘했다. 초반보다 흐름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불이 들어온 객석에서 일어서며 예열이 끝난 차의 시동을 도로 끈 느낌을 받았다. 오랜만에 모는 차는 시간이 지나야 길이 든다. 한때 잘나가던 명차를 닮은 악단을 승차감 좋게 길들여줄 드라이버는 과연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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