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나는 詩]사진… 지금은 멀리 떠난 아버지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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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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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속 내 아이들 사진을 보고… 해진 지갑 속에 나를 넣고 다닌…

허름한 양복바지 뒷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 넣은 아버지의 오래된 지갑. 그 속에는 고이 ‘모셔둔’ 자식들 사진이 있다. 거나하게 취해 불콰해진 얼굴의 아버지는 허름한 선술집 한편에서 사진을 꺼내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을 터. 이제 내가 아이들 사진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닌다. 이젠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속에서 내 아버지의 미소를 읽는다. 괜스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이달에 만나는 시’ 2월 추천작으로 이성복 시인(61·사진)의 ‘사진’을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됐다.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시인이 추천에 참여했다.

이성복 시인의 아버지는 2005년 세상을 떴다. 이 시를 쓴 것은 그 후로 3, 4년 뒤. 아들들의 사진 속에서 나를 보고, 그런 나를 통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는 윤회 같은 혈연. “아버지는 아주 내성적인 분이셨어요. 3대 독자셨고, 자기 취미생활이나 이런 것도 없었고, 당신을 위해서는 돈을 쓴 적이 없었어요. 아니 그 시대 부모들이 다들 그러셨죠.”

10년 만에 시집을 낸 시인은 지난해 계명대에서 정년퇴임했다. “사회생활에서도 명예퇴직했으니 제 시 작업도 한번 정리하고 싶었죠. 제게는 어떤 분기점 같은 시집입니다.”

장석주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무엇을 써도 시가 되는 경지에 들어섰구나, 하는 느낌이다. 사물의 구체성은 명징하고, 묽은 슬픔과 괴로움은 갑자기 까칠해지고 날카로워진다. 그 명징과 묽음이 만나 아득한 생의 풍경을 이룬다.” 김요일 시인은 “손을 쓸 수도 없는 생이라는 비극을, 그 슬픈 장르를 이성복은 소멸의 사유로 담아낸다. 그는 시를 넘어섰다”며 추천했다.

“시집을 읽고 여행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뒹구는 돌이 되어 찾아가던 남해 금산과 그 여름의 끝에 있던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먼 여행에서 돌아온 선생의 시를 읽고 나는 문득 사랑을 하고 싶어졌다. 욱신거리는 생과의 지독한 사랑!” 손택수 시인의 추천사다. 이원 시인은 “이성복의 시가 아니라 이성복의 ‘정신’이라고 해야 맞다. 가장 뜨거운 ‘최소’에 집어넣은 맨손을 거두어들이는 법이 없는 ‘불가능한 사랑’, 이것이 ‘빛’이다!”며 추천했다.

이건청 시인은 박희진 시인의 시집 ‘4행시 17자시’(서정시학)를 추천하며 “17글자로 한 편의 시를 이룬 ‘17자시’ 시편들은 형형한 정신을 담은 말의 극한을 추구해 보여준다. 지루한 서술이 판치는 요즘 한국시가 반면교사로 삼아도 좋을 것”이라고 평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사진#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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