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美 공동 연구팀 ‘네이처’ 발표
개량 바이러스를 운반체 사용… 42명 중 38명이 청력 회복돼
유전성 실명-빈혈 치료 개발자… ‘과학계 오스카상’ 나란히 수상
인류가 치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난치성 유전 질환들을 서서히 정복하고 있다. 유전 질환의 원인 유전자를 교정하는 유전자 치료 기술을 활용한 치료 성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것.
구글을 창업한 세르게이 브린과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 등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설립한 ‘과학계의 오스카상’ ‘실리콘밸리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브레이크스루상’의 생명과학 부문 올해 수상자로도 유전자 치료 개척자들이 선정됐다. 유전자 치료의 가능성이 인정됐다는 뜻이다. 유전자 치료의 적용 범위가 난치성 유전 질환 전반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선천성 난청질환 환자 청력 회복 확인
유전자 치료는 결함 있는 유전자를 고치거나 대체해 질환의 근본 원인을 없애는 접근이다. 서 일라이 중국 푸단대 부속 이비인후과병원 교수와 천정이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 공동 연구팀은 ‘상염색체 열성 난청 9형(DFNB9)’ 환자 42명을 대상으로 유전자 치료제 ‘AAV1-hOTOF’를 투여한 다기관 임상시험 결과를 22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DFNB9은 속귀에서 소리를 뇌로 전달하는 단백질 오토페를린을 만드는 오토페를린 유전자(OTOF)에 돌연변이가 생겨 발병하는 선천성 난청이다.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만 신호가 뇌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청각신경병증’의 일종이다. 어린이 청각신경병증 환자의 약 41%에서 OTOF 돌연변이가 발견되지만 승인된 약물이 없어 달팽이관에 전극을 심어 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인공와우 이식이 사실상 유일한 선택이다.
연구팀은 정상 오토페를린 유전자를 바이러스에 실어 환자의 귀에 주입하는 유전자 치료 방식을 택했다.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개량한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를 운반체로 써 정상 유전자를 속귀 세포 안으로 들여보낸다. 속귀 세포는 새로 들어온 정상 유전자를 바탕으로 정상 오토페를린 단백질을 만들어내 막혀 있던 소리 신호 전달이 복구되는 원리다.
중국 8개 병원에서 0.8세 영아부터 32.3세 성인까지 42명을 치료한 결과 38명의 청력이 회복됐다. 소리를 들려줬을 때 뇌가 반응하기 시작하는 최소 소리 크기는 치료 전 평균 97데시벨(dB)에서 치료 1년 뒤 54dB, 2.5년 뒤 42dB로 계속 낮아졌다. 일반적으로 정상 청력은 25dB 이하다.
일부 환자는 치료 닷새 만에 소리를 들었다. 0.5∼18세 환자의 회복이 성인보다 원활했고 어린이 참가자 중에는 속삭이는 소리까지 듣는 사례도 나왔다. 투여량을 더 늘리지 못하게 할 만큼 심각한 독성이나 중대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서 일라이 교수는 “이번 결과가 DFNB9뿐 아니라 다른 유전성 난청의 유전자 치료 개발에도 귀중한 참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난치성 낭포성 섬유증 치료 가능성도
폐·장·췌장 등에 끈적한 점액이 쌓이는 난치병 낭포성 섬유증의 치료 사각지대를 유전자 치료로 공략한 연구 성과도 공개됐다. 알레산드로 움바흐 이탈리아 트렌토대 연구원과 안나 체레세토 교수 연구팀은 난치병 낭포성 섬유증을 일으키는 CFTR 유전자의 ‘1717-1GA’ 돌연변이를 교정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22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1717-1G>A는 CFTR 유전자에서 염기 하나가 엉뚱한 염기로 바뀌는 변이다. 변이가 생기면 CFTR 단백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세포 안팎의 이온 이동이 막히고 폐·장 등에 끈적한 점액이 쌓인다. 전체 낭포성 섬유증 환자의 약 0.8%에서 발견되지만 아직 승인된 약이 없다.
연구팀은 유전자를 구성하는 염기 중 하나인 ‘아데닌’을 교정하는 유전자 교정 기술로 잘못 바뀐 염기를 원래 형태로 되돌렸다. 환자에게서 얻은 기관지 세포로 실험실에서 만든 인공장기에 유전자 교정 도구를 적용하자 CFTR의 이온 수송 기능이 되살아났다.
● 유전자 치료 선구자, 브레이크스루상 대거 수상
잇단 유전자 치료 성과는 비단 두 연구만의 일이 아니다. 1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26 브레이크스루상 시상식’에서는 생명과학상 3건 중 2건이 유전자 치료 선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진 베넷, 앨버트 매과이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부부와 캐서린 하이 전 스파크테라퓨틱스 대표는 유전성 망막질환 ‘레베르 선천 흑암시’를 치료하는 ‘럭스터나’를 개발한 공로로 생명과학상을 수상했다.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럭스터나는 최초의 유전자 대체 치료제다. 스튜어트 오킨 미국 하버드의대·보스턴아동병원 교수와 스위 레이 테인 미국 국립심폐혈액연구소(NHLBI) 연구원도 태아 헤모글로빈이 성인 헤모글로빈으로 바뀌는 전환 스위치를 밝혀 겸상적혈구병과 베타지중해빈혈을 고치는 크리스퍼 치료제 ‘카스게비’ 개발의 토대를 닦은 공로로 공동 수상자가 됐다.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
인간에게 병을 일으키지 않는 바이러스로 특정 조직이나 기관에 치료 유전자를 전달하는 데 쓰인다. 대체로 면역 거부 반응이 낮아 인체 내 유전자 치료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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