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을 당한 딸을 대신한 엄마 유림(유선)의 복수를 그린 ‘돈 크라이 마미’. 유림은 법이 보호해 주지 못한 딸의 죽음 앞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데이지 제공
12월 19일 대통령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정치의 계절, 사회정치적 내용을 담은 영화가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돈 크라이 마미’(22일 개봉)와 ‘26년’(29일 개봉)은 각각 보수와 진보 진영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들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사적(私的) 복수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 흥미롭다.
○ 같은 복수극, 다른 관심
유선과 남보라 주연의 ‘돈 크라이 마미’는 성폭행 당한 딸을 대신한 엄마의 복수극을 그렸다. 2004년 경남 밀양시에서 발생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이혼한 뒤 딸 은아(남보라)와 사는 엄마 유림(유선)은 딸이 독서실 옥상에서 성폭행 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 재판부는 가해자들이 미성년자이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이들을 석방한다.
20일 ‘돈 크라이…’를 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청소년 및 아동 성폭력 범죄자에 대해 “사형까지 포함해 강력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영화에 힘을 실어줬다.
만화가 강풀의 웹툰이 원작인 ‘26년’은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유족이 학살의 원흉인 ‘그 사람’을 암살한다는 줄거리를 담았다. 창문을 통해 날아온 계엄군 총탄에 어머니를 잃은 미진(한혜진), 야산의 시체 더미 속에서 아버지 시신을 발견한 진배(진구), 광주 금남로에서 계엄군 총탄에 누나를 잃은 정혁(임슬옹)이 복수를 위해 의기투합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측은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선거 유세가 본격화하면 일정이 바빠 (문 후보가) 관람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영화 설정이나 내용 때문에 ‘26년’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 영화의 완성도는?
영화 ‘26년’에서 ‘그 사람’ 암살의 주 임무를 맡은 미진 역의 한혜진. 사격선수 출신인 미진은 어린 시절 안방으로 날아든 계엄군의 총탄에 어머니를 잃었다. 청어람 제공‘돈 크라이…’의 주 메시지는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최근 잇따른 성범죄로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영화는 주제의식 전달에 치우쳐 극적 재미를 살리지 못했다. 임권택 감독의 아들인 권현상 등이 연기한 가해자들의 캐릭터는 과장돼 현실성이 떨어진다. 현실적인 소재로 빚은 영화일수록 캐릭터가 제대로 살아 있어야 하기에 아쉬움이 든다.
이야기에도 ‘구멍’이 보인다. 엄마가 성폭행범들에게서 동영상을 빼앗으려는 이유를 공감하기 힘들다. 이혼해 따로 살고 있지만 은아의 아빠가 딸의 비극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경찰관이 흉기를 든 범인에게 총기를 사용하는 방식도 사전 조사를 했는지 의문이다. 영화는 한 장면 한 장면, 디테일이 모여 완성품이 되는 예술이다.
복수극의 성패는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이런 점에서 ‘26년’은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초반부 애니메이션을 통해 광주의 비극적 상황을 그린 장면은 실사 영화보다 울림이 크다. 이 장면은 지난해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기록을 갈아 치웠던 오성윤 감독이 연출했다.
중요 장면마다 극적 긴장감을 높인 연출 솜씨도 돋보인다. 국가대표 사격선수 출신인 미진이 횡단보도에 멈춰 서 ‘그 사람’을 총으로 겨누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조직폭력배를 연기한 진구의 ‘뜨거운 연기’와 어머니의 비극을 가슴에 감춘 한혜진의 ‘차가운 연기’가 앙상블을 이룬다. 다만 초반부에 좀 더 인상적인 에피소드들을 추가했다면 늘어지는 극의 리듬을 살릴 수 있었을 듯싶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