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거지… 늘 자유가 고프죠
통기타 하나 덜렁 메고 부르는 노래엔 없어보이지만 질박한 간절함이…
김거지는 어렵게 모은 돈으로 샀다는 기타를 부여안았다. “‘찌질한’ 음악이라고 불릴지라도 사랑 노래보다는 삶의 노래를 하고 싶어요.”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키 176cm에 몸무게 52kg. 고수머리에 까만 얼굴. “안녕하세요. 거지입니다.” 고르지 않은 치열이 드러나는 큰 웃음. 김거지(본명 김정균·27)는 확실히 유복한 이미지는 아니다.
그는 신인 가수다. 최근 내놓은 데뷔 앨범 제목이 ‘밥줄’이다. 음반 표지에는 한강을 배경으로 마포대교 앞에서 앙상한 척추뼈를 드러낸 채 구걸하는 남자의 모습을 담았다. 김거지 자신이다. “최근 방송 출연 때문에 방송사에 가사 심의를 넣었어요. 노랫말은 다 통과했는데 ‘김거지’란 이름 석 자가 걸렸죠.” 얼마 전 출연한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그의 이름은 ‘김정균(김거지)’이란 자막으로 소개됐다.
‘내 몸에 깃들어 사는 소년과 노인과 늑대 같은 남자들에게 말을 건다…무엇도 아름답지가 않다고….’(‘독백’ 중) 통기타 한 대 둘러메고 부르는 그의 노래에서, 정교한 절창에서 찾기 힘든 질박한 간절함이 묻어났다.
그는 이 노래로 지난해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탔다. 건반으로 세련된 화성을 짚으며 부드럽게 노래하는 ‘인텔리 싱어송라이터’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그는 “내 음악 동인(動因)은 열등감”이라고, 음악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음악을) 엄마와 바꾼 느낌 때문”이라고 했다.
2008년 여름. 그가 인하대 건축공학과를 휴학하고 경기 의정부시에서 공병으로 복무하던 때다. 모친이 뇌출혈로 쓰러져 찾은 병원에서 마침 ‘자선음악회’가 열렸다. 얼결에 오른 무대에서 서툰 피아노 반주로 노래했다. “너무 못 불러 한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어머니의 주치의가 찾아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어요. ‘열정을 봤다. 음악을 해보라’고.”
제대 후 인하대 앞 반지하 자취방에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좋은 통기타를 사고 싶은데 돈이 없었다. 촬영 보조 아르바이트로 무거운 지미집 카메라를 끌고 왕릉 위로 올라갔고, 손님 없는 새벽에 노래를 맘껏 할 수 있는 게임방에서 일했다. 가스비를 아끼려고 한겨울에 찬물로 머리를 감았다. 머리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 그때 친구가 지어준 별명이 ‘용현동의 작은 시인 김거지’다.
어머니는 2008년 뇌출혈 이후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조금 전에 밥을 함께 차려 먹어도 ‘밥 먹었냐’고 물어보세요. 제가 가수라는 것도 확실히 인지하지 못하세요. 가끔 ‘거지야’라고 놀리기도 하시고.”
명색이 경연대회 대상 수상자이지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슈퍼스타 K’라도 나가볼까 생각하던 차. 선배 가수 이한철의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 “오디션 프로들이 전부 ‘어떻게 부르느냐’를 논하는 요즘,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아직도 ‘무엇을 부르느냐’를 얘기하고 있어. 자부심을 가져야 해.”
그의 노랫말에는 ‘내 하얀손에 할 일을 줘’(‘하얀손’) ‘저기 보이는 이정표는 믿을 만한 잣대일까’(‘길을 잃다’)처럼 젊은 세대의 무력감과 좌절을 표현한 것이 많다.
히트곡을 많이 내 부자가 돼도 김거지란 그 이름, 유효할까. “저는 배가 잘 안 고파져요. 많이 굶어서 그런 건지, 배가 안 고파서 굶게 된 건지…. 제가 가장 관심 있는 건 자유예요. 먹는 건 덜 먹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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