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작가 백남룡 소설 ‘벗’ 佛서 번역출간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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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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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찬양 벗고 일상 묘사한 문제작”

북한 작가 백남룡(63·사진)의 소설 ‘벗’이 최근 프랑스에서 ‘Des Amis’(악트 쉬드 출판사)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북한 소설이 프랑스어로 번역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체제 찬양이나 우상화에서 벗어나 북한 사회의 연애와 결혼, 사회문제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프랑스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간 르몽드는 15일자 북리뷰에서 “북한 문학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혁명적 낭만주의’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일상적 삶을 다루는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북한 소설의 주인공 자리에서 전통적인 당 지도자, 노동자, 혁명영웅이 사라지고 그 대신 재판관 과학자 부부 가족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현실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시사주간 엑스프레스는 “한 부부가 이혼한다. 여자는 성악가고, 남자는 노동자다…. 만일 북한이 배경이 아니었다면 서구에서는 너무나 진부한 부부 드라마였을 것”이라며 “그러나 유럽에서 한 번도 번역된 적이 없는 북한 소설이기 때문에,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창문”이라고 소개했다.

1988년 북한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한 아이의 엄마인 성악가 채순희가 기계공장 선반 노동자인 남편 이석춘과 이혼을 결심하고 이혼 심리담당 판사 정진우를 만나는 데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혁명 영웅이 아니며 일상생활의 고통을 직면하고 있는 평범한 주민들이다. 그들은 ‘출세 지상주의’를 거리낌 없이 표출하기도 한다. 이 책은 발간 초기 무책임한 관료의 부패, 권력남용 등을 비꼬는 장면 때문에 검열당국의 비판을 받았지만 이후 북한 정권은 이 책을 ‘건설적인 비판’의 모델처럼 소개해 왔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르몽드는 이 책의 한계도 분명하게 지적했다. “이 책의 저자는 반정부 책동을 하거나, 김정일 정권을 비판하지 않으며,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며” “정권이 인정하는 ‘건전한 비판’이란 북한체제의 일탈이 부패관료, 기회주의자, 이기주의자, 출세주의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으로만 한정돼 있다”는 것. 그러나 르몽드는 이 소설에 나타난 북한 여성상의 변화에 대해 주목했다. 여성이 아내나 어머니로서의 ‘혁명과업’을 벗어던지고 개인적인 열망을 표출함으로써 부부 사이에 긴장관계가 표출된다는 점이다. 르몽드는 “1990년대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던 ‘고난의 행군’ 시절을 거치면서 장마당 상인과 공장 노동자로서 경제활동에 적극 뛰어들었던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거대한 영웅으로 등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작가 백남룡은 10년간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다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20여 편의 장편 및 단편을 발표한 북한의 대표적 현대 작가. 번역을 맡은 파트리크 모뤼스 씨는 “한국의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저작권을 얻기 위해 두 번이나 평양을 방문해 작가를 만났다”고 말했다.

프랑스 동양문화언어대(INALCO) 교수로 악트 쉬드 출판사 한국어 컬렉션 총책임자인 모뤼스 씨는 조만간 방북해 북한의 다른 젊은 소설가들을 인터뷰할 예정이다. 그는 “백남룡 이후 잇따라 북한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는 식량부족, 결근, 경제적 불평등, 부패와 같은 사회문제들도 등장하고 있어 주목된다”며 “아무리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문학적 표현들도 이면에는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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