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의 명품 문화유산, 전시공간 좁아 한숨… 보존시설 낡아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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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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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간송 전형필 타계 50주년… 간송미술관 지원 각계 한목소리

《해마다 봄가을 두 차례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문을 활짝 열어 관람객을 맞는다. 1971년 시작해 올봄 80회를 맞은 기획 전시로, 올해는 5월에 ‘사군자대전’을 성황리에 마쳤다. 매번 주제를 달리해 열리는 보름 동안의 짧은 전시회에는 평균 수만 명의 관객이 몰려든다. 주말에는 입장을 기다리며 100m가량 긴 줄을 늘어서기도 한다. 해마다 관객이 늘고, 수십만 명을 넘어선 적도 있다. 고미술 전공자와 애호가, 각계 명사와 지식인이 대부분이지만 학생들의 단체관람도 많다. 관람객들은 매번 전시 유물에 놀라고 이런 명품을 돈 한 푼 안 받고 보여주는 데 놀란다. 간송의 유지(遺志)와 그를 충실하게 받드는 후손 및 ‘간송미술관 지킴이’ 최완수 연구실장(69) 덕분이다.》

1938년에 지어진 간송미술관 보화각. 봄 가을 두 차례 보름씩 여는 기획전시회에는 수만∼수십만 명이 찾아오지만 낡고 비좁아 명품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1938년에 지어진 간송미술관 보화각. 봄 가을 두 차례 보름씩 여는 기획전시회에는 수만∼수십만 명이 찾아오지만 낡고 비좁아 명품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간송미술관이 수장하고 있는 명품 문화재. 왼쪽 위부터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70호), 청자상감운학매병(국보 68호), 청자 오리형 연적(국보 74호) 및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동아일보DB
간송미술관이 수장하고 있는 명품 문화재. 왼쪽 위부터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70호), 청자상감운학매병(국보 68호), 청자 오리형 연적(국보 74호) 및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동아일보DB
내년이면 ‘민족 문화유산의 수호자’라는 칭송을 받는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세상을 떠난 지 50주년이 된다. 이를 계기로 간송이 전 재산과 혼을 바치다시피 하며 수집한 명품 문화유산의 체계적 관리와 보존 및 연구를 위해 정부와 각계가 힘을 모아 간송미술관의 ‘제2의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또 1938년 간송이 공들여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박물관인 보화각(보華閣)의 신축 또는 개축 문제도 본격 논의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간송이 모으고, 2대(代)가 지켜온 간송컬렉션의 3대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현재 간송미술관이 수장하고 있는 서화와 전적, 도자기, 조각, 공예품 등의 정확한 수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과 청자상감운학매병(국보 68호) 혜원풍속도(국보 135호) 등 국보 12점을 비롯해 보물 10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 등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 등이 공개됐을 뿐이다. 나머지 수장품 중에도 국보와 보물급이 수두룩하다는 것이 학계의 일치된 평가다.

그렇지만 간송미술관의 미래에 대해서는 반드시 낙관적인 견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미술관이 박물관법의 적용을 받는 등록 박물관이 아니라 국내 최초의 사설 개인박물관이기 때문이다. 후손들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이 엄청난 유물들이 흩어지거나 일부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간송미술관 운영 방식에 아쉬움을 표하는 인사들도 있다. 유물 전시 및 연구실인 보화각이 낡고 비좁아 유물들이 명품에 걸맞은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 수장고가 오래돼 첨단 항온 항습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유물 보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소장품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고 있는 데다 도제식 운영으로 전문가들조차 소장 유물을 전혀 열람할 수 없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은 간송미술관의 소장 유물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와 실태 파악을 하지 못했다. 간송 측은 공사립 박물관의 유물 대여와 문화재 지정 요청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미술사학계나 문화재위원 중에서도 간송미술관의 수장고를 둘러본 인사는 거의 없다.

간송은 세 아들을 두었으나 장남이 일찍 세상을 떴고, 차남 전성우 씨(77)와 삼남 전영우 씨(71)가 남았다. 세 딸도 생존해 있다. 두 아들은 모두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전성우 씨는 서울대 미대 교수를 지냈고, 전영우 씨는 상명대 조형예술학부 교수를 지냈다. 전성우 씨는 간송이 인수해 키운 보성고 재단이사장을, 전영우 씨는 간송미술관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간송미술관 울타리 내에 이웃해 살고 있는 두 아들은 간송미술관 운영이나 전시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성우 씨의 부인 김은영 씨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3호 매듭장이고, 맏딸 전인지 씨는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로 재직 중이다. 전영우 씨의 세 자녀는 모두 미술을 공부했다. 3대에 걸쳐 민족 문화를 계승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서류상으로 지정문화재는 모두 전성우 씨 명의로 등록돼 있다.

‘민족 문화유산의 수호자’ 간송 전형필의 생시 모습.동아일보DB
‘민족 문화유산의 수호자’ 간송 전형필의 생시 모습.동아일보DB
간송미술관을 움직이는 ‘실세’는 최완수 연구실장이다. 1966년 최순우 선생의 권유로 간송미술관에 발을 디딘 그는 독신으로 제자들을 기르면서 35년간 변함없이 유물을 지켰다. 간송의 유물을 독점하다시피 한 덕분에 그는 ‘진경산수’와 ‘겸재 정선’ 등에 관해 독보적인 연구 업적을 남겼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사는 “간송미술관은 법률적으로 공공박물관이 아닌 개인박물관으로 사실상 개인 컬렉션이나 다름없으며, 그동안 ‘소유권은 가족’ ‘관리권은 최완수’에게 일임된 형태로 운영돼 왔다”면서 “간송 2대, 그리고 최완수 실장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속세법 12조에 따르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국가지정문화재 및 시도지정 문화재와 보호구역 내 토지는 비과세되는 상속재산이다. 하지만 비지정문화재는 경우가 달라 난처한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

간송미술관에 대한 ‘각별한 지원’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장과 문화재위원장을 지낸 정양모 선생(77)은 “간송의 수장품은 자신의 재산가치 증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문화 수호 차원에서 수집과 관리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전제하면서 “나라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법이니 제도니 이런 것 따지지 말고 무조건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차제에 국가 차원에서 ‘간송미술관 지원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간송가(家)에 예우를 갖춰 보상을 해드리고 유물을 기증받아 현 위치에서 좀 더 많은 분들이 쾌적하게 유물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면서 “건물만 거창하게 짓는 데 그치지 말고, 인건비 유지비 보안비 등 제반 비용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69)는 “누가 뭐라고 해도 간송 가족의 의사를 우선 존중해야 한다”면서 “어설프게 지원하면서 섣부른 간섭을 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간송가의 차남인 전성우 씨는 “그동안 각계에서 간송미술관을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는 여러 차례 나왔으나 제대로 성사되지는 않았다”면서 “가족의 힘이 닿는 데까지는 독자적으로 꾸려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삼남 전영우 씨는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지원에는 반드시 조건이 붙더라”면서 “가족 어느 누구도 간송 컬렉션을 사유재산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후대에 상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완수 실장은 “간송가 아들 두 분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오늘의 간송미술관이 존재할 수 있었다”면서 “21세기는 문화의 공유 개방 참여의 시대임을 인정하지만 어떤 경우든 정부나 지자체의 간섭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나도 나이를 자꾸 먹어가니 언제까지 이런 시스템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면서 “간송이 전 재산을 털어 조상이 남긴 명품 유산들을 지켰으니 이를 보존 유지하는 것은 나라와 겨레의 몫이 아닐까 한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설립 담당 주무부서인 문화부와 문화재청은 간송미술관 지원에 대한 원칙에는 찬성하면서도 관련법과 소장유물 관리규정 등을 들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화재청 고위 관계자는 “간송미술관의 민족 문화적 가치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현행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르면 예산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유물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기증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며, 박물관 등록을 하게 되면 연간 90일 이상 개방하고 하루 개방 시간은 4시간 이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간송가와 문화계가 중지를 모아 ‘가족이 중심이 되고 각계 명망가와 전문가들이 포함된’ 사단법인을 만들거나 국립중앙박물관 분관 같은 형태로 운영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아무런 조건 없이 전시 및 연구 공간을 마련해 간송미술관 측에 유물 전시와 보존을 위탁하도록 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문화부 중간 간부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유물 관리규정에서 인정하는 ‘유물수탁’ 제도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는 ‘개인 또는 단체 소유의 유물을 박물관이 일정 기간 위임받아 관리, 활용하는 제도’로 소유권 이전 없이 국가가 유물을 수탁관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유물이 너무 많아 단순 수탁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간송미술관에 대한 지원 문제 등을 거론했으나 공론화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계 인사들은 “어차피 한 가문이 여러 대를 이어 문화유산을 관리, 보존하기는 힘든 노릇”이라며 “간송 서거 50주기를 계기로 ‘간송미술관’ 중흥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 범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예술 정신을 태동시켰던 메디치 가문의 경우, 가문의 문을 닫으면서 모든 소장품을 피렌체 시에 기증했다. 1743년 가업이 기울고 외국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었던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는 “우리 가문이 소유한 모든 예술품을 피렌체 시에 기증한다. 조건은 단 한 개의 작품도 피렌체 시 밖으로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피렌체에 매년 수백만 명이 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메디치 가문이 소장했던 걸작 예술품은 지금도 피렌체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명철 문화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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