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찾아온 박수근의 ‘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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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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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미군 PX 점원과 초상화가로 만났던 인연 이어주려…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이 고 박완서 선생 댁에 보낸 박수근 판화 3점 중 하나인 ‘나무와 두 여인’. 고인의 데뷔작인 ‘나목’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갤러리현대 제공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이 고 박완서 선생 댁에 보낸 박수근 판화 3점 중 하나인 ‘나무와 두 여인’. 고인의 데뷔작인 ‘나목’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갤러리현대 제공
화가 박수근(1914∼1965)이 작가 박완서(1931∼2011)를 찾아갔다. 두 사람이 6·25전쟁 때 미8군 PX에서 만난 지 60년 만의 만남이었다. 당시 화가는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 주고 생계를 이어가던 고단한 ‘환쟁이’였고, 전쟁으로 서울대를 중퇴한 작가는 미군들에게 그림을 사라고 권유하던 꽃다운 청춘이었다.

무명화가 박수근을 국민화가로 만든 주역인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이 21일 박수근의 판화 3점을 경기 구리시 아천동 박완서 선생 댁에 보냈다. 여성동아 장편공모를 통해 등단해 훗날 국민작가가 된 ‘가정주부 박완서’의 데뷔작 ‘나목(裸木)’의 모티브가 된 ‘나무와 두 여인’ 등 3점이었다. 박완서 선생이 박수근을 모델로 쓴 데뷔작 ‘나목’ 또한 박 화백을 국민화가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최근 지인을 통해 박완서 선생 댁에 박수근 화백의 작품이 한 점도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된 박 회장은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해 오던 박 화백의 판화 중 3점을 골라 이날 댁으로 보냈다. 1990년 박수근 25주기 전시 때 유족과 상의해 한정판으로 만든 판화(AP·Artist's Proof·작가 공인)였다.

선생의 자택을 지키고 있다 예기치 않은 선물을 받은 딸 호원숙 씨는 “참 고맙고, 감사하다. 빈소에도 다녀가셨는데…”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박완서 선생은 지난해 5월 한 달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국민화가 박수근 45주기 기념전’에도 다녀왔다.

12일 유족과 지인들은 박완서 선생이 세상을 떠난 50일을 맞아 경기 용인시 천주교 공원묘지 고인의 묘소에서 천주교식으로 조촐한 ‘50재’를 지냈다. 고인은 자신에 앞서 세상을 떠난 남편과 외아들 곁에서 안식하고 있다. 가족들은 고인이 생시에 즐겨 마시던 와인을 봉분에 따라 드렸다. 25일 밤에는 MBC TV에서 박완서 선생에 대한 스페셜 다큐멘터리가 방영된다. 유난히 길고 추운 겨울을 나목으로 지냈던 백일홍 산수유 등 선생이 생시에 정원에 심은 나무들이 서서히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오명철 문화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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