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충돌하는 詩語들 격렬해진 실험성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20일 03시 00분


◇타인의 의미
◇김행숙 지음 152쪽·8000원·민음사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포옹’에서)

김행숙 씨의 새 시집은 포옹에 대한 기이한 묘사로 시작한다. 시인에게 포옹이란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하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포옹으로 인해 ‘너’는 볼 수 없는 것이 됐다면서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라고 말한다. 포옹하는 ‘너’는 ‘나’를 어떻게 보느냐고, ‘나는 검정입니까?’라고 화자는 묻는다. 이 정직한 질문은 그러나 시에서 발화될 때 낯설게 읽힌다. 시인은 이렇게 당연한 듯 보이는 구절들을 엮어서 전혀 다른 문양의 직물로 만들어낸다.

김행숙 씨는 2000년대 시단에 충격을 준 미래파 시인들의 예언자 역할을 했던 시인이다. 세 번째 시집 ‘타인의 의미’에서 그는 언어들이 뜨겁게 충돌하는 시의 공간을 펼쳐 보인다. ‘어느 저녁/타인의 살갗에서/모래 한 줌을 쥐고 한없이 너의 손가락이 길어질 때//모래 한 줌이 흩어지는 동안/나는 살갗이 따가워.//서 있는 얼굴이/앉을 때/누울 때/구김살 속에서 타인의 살갗이 일어나는 순간에.’(‘타인의 의미’에서)

‘타인의 의미’라는 이 시는 그것이 언어로 답할 수 없는 문제임을 일러준다. 시인은 살갗, 모래, 손가락, 얼굴 같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시적 대상을 언급한다. ‘따갑고’ ‘흩어지고’ ‘길어지고’ ‘앉고’ ‘눕는’ 행위 또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동작이다. 타인의 의미란 그런 구체적인 것들로만 답할 수 있다고 시인은 암시한다. 그는 시 ‘꿈꾸듯이’에서 좀 더 직접적으로 ‘우리가 존재한다는 걸 무슨 수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한다. 시인의 실험정신이 더욱 격렬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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