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퓨전국악, 판소리 타고 두둥실 날다

동아일보 입력 2010-09-16 03:00수정 2010-09-16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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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국악단 ‘슬기둥’ 창단25돌 안숙선 명창과 조인트 콘서트
20일 슬기둥 25주년 기념공연에서 판소리 다섯마당 대표 대목을 협연하는 안숙선 명창. 사진 제공 슬기둥
《9일 오후 10시가 넘은 늦은 시각. 장대비를 뚫고 10여 명의 국악기 연주가들이 하나둘씩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연습실로 모여들었다. 각자 교수와 국악원 단원, 실내악단 소속으로 바빠 낮에는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다고 했다. 조율을 끝낸 뒤 태평소와 가야금 등 국악기, 기타와 건반, 드럼 등 양악기가 한데 어울리며 신명나는 한판을 펼쳐냈다. 한바탕 합주가 끝난 뒤 피리와 태평소를 맡은 윤형욱 씨는 “피곤하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거니까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다”면서 웃었다.》
1985년 젊은 국악가 8명이 “대중에게 친숙한 국악을 만들어 보자”며 실내국악단을 창단했다. 팀명은 ‘슬기둥’. 거문고를 뜯을 때의 활달한 손놀림을 뜻한다. 그 이름처럼 슬기둥은 25년 동안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직접 작곡, 편곡한 앨범 8장을 냈고 600여 회에 달하는 국내외 공연을 펼쳤다. 최근 ‘퓨전국악’ ‘월드뮤직’이란 이름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신세대 국악 그룹의 원조 격인 셈이다.

이런 슬기둥이 창단 25주년을 맞아 올해 활동 53주년을 맞은 명창 안숙선 씨와 손잡고 조인트 콘서트를 펼친다. 20일 오후 7시 반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슬기둥-안숙선, 비상(飛上)을 꿈꾸다’. 한국의 대표 국악 실내악단과 대표 명창의 만남인 셈이다. 제안은 안 씨가 지난해 말 꺼냈다. “슬기둥이 25주년을 맞는다는데 한번 같이 기념공연을 해보면 좋을까 싶어 먼저 제안했지요. 그동안 주로 대규모 국악관현악단과 호흡을 맞췄는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실내악단과는 어떤 소리가 나올까 기대가 됩니다.”(안숙선)

판소리 명창인 안 씨가 공동 공연을 제안할 정도로 이제 슬기둥의 음악은 국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만 25년 전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KBS국악관현악단의 연주가 이준호(소금·대금), 강호중(피리·기타), 조광재(신시사이저·작곡), 민의식(가야금), 문정일(피리), 노부영(가야금·양금), 정수년(해금), 오경희 씨(아쟁) 등 8명이 슬기둥을 창단하면서 국악에 기타와 신시사이저를 첨가하자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국악과 양악은 물과 기름 같은 존재로 여겨졌고 서로 배타적이었다.

창단 멤버 중 유일하게 남아 대표를 맡고 있는 이준호 씨(50·KBS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는 “당시 국악계 선배들로부터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당장 그만둬라’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며 웃었다. “당시 대중에게는 국악에 대한 편견, 이를테면 어렵고 느리고 지루하다는 인식이 많았죠. 먼저 그것을 깨는 게 중요했습니다. 슬기둥의 음악은 국악을 기반으로 서양음악을 추가했기 때문에 전통성을 훼손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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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고 듣기 편한 ‘퓨전국악’이 등장하자 호응은 컸다. 대표곡 ‘산도깨비’와 ‘소금장수’ 등은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수록됐다. 이 씨는 “덕분에 1990년대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들이 공연장이나 연습실을 찾아와 음악을 배워 갔다”고 말했다.

기수별로 멤버를 바꿔 현재 4기 단원까지 뽑았다. 슬기둥이 창단한 해에 태어나 이제는 단원이 된 김기범 씨(25·신시사이저, 작·편곡)는 “두 달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슬기둥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들었고 저도 좋아하게 돼 단원에까지 뽑혔다. 열심히 활동해 아버지께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선 판소리 다섯마당의 대표 대목을 골라 슬기둥의 연주와 함께 안 씨가 소리를 하는 이색무대를 선보인다. 안 씨는 “한 곡에 10분 정도를 불러 지루하지 않고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색소폰에 이정석 씨, 기타에 그룹 ‘백두산’의 김도균 씨도 참가한다.

이준호 씨는 “악단이 오래됐다는 사실보다 새롭게 계속 도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라면서 대중에게 더욱 쉽게 다가서는 국악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모든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1544-1555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실내 국악그룹 슬기둥이 서울 서교동 연습실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슬기둥은 오늘날 붐을 이룬 퓨전국악의 ‘원조’로 꼽힌다. 사진 제공 슬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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